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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의불빛 Sep 15. 2020

인류의 멸망을 막고 있는 취미

【King Crimson - Starless】

"만일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핵무기나

  문화의 대중화에 의해서일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


오늘 L교수님과의 대화에서 듣게 된 칼 구스타프 융의 이야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핵무기는 알겠는데, 문화의 대중화에 의해서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나의 궁금증은 바로 이어서 하시는 말씀에 의해서 해소됐다.

로마제국을 예로 들었는데 만일 로마가 어떤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그 나라를 정복하게 된 후에,

정복당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전통등을 모두 없애고

로마의 것으로 통일되기를 현실로 또는 상황적으로 강요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사람들은 여전히 생존해 있겠지만,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존재했던 그 나라의 정신문화와 전통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서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각각의 정신문화와 전통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 하나의 역사와 문화, 정신만이 남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멸망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L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과 트로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비록 다른 시간대였지만 작년까지 같은 라디오 방송국

에서 함께 했던 1세대 DJ로 유명하신 이양일 선생님의 저서에 의하면 팝 음악만 해도 무려 121가지의 장르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월드뮤직이라고 통칭하는 음악 안에도

각각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특별한 문화가 담겨 있어 개별적으로 우리에게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재즈는 어떤가, 그 안에는 블루스가 있고 랙타임, 가스펠, 스윙, 보사노바 등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마치 요즘에는 아이돌 음악과 트로트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편중돼 있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요즘도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노래가
담겨 있는 음반을 기어코 찾아내서 주문을 하고,
또 그것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보면 "참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나의 이러한 일들이, 세계적인 정신분석심리학의 대가인 칼 구스타프 융의 의견에

따르면 인류의 멸망을 막고 있는 숭고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에 함께해 주기를 바라며, 예전엔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아낀 나머지 자주 듣지 않고 참았다가 꼭 듣고 싶을 때만 한 번씩 들었다는 프로그래시브의 명곡을 추천해 본다.

이 노래는 대중음악으로는 좀 긴 시간인 12분이 넘는 노래로, 영국의 프로그래시브 록 밴드인 King Crimson

의 Red앨범에 수록됐던 Starless라는 곡이다.

마치 시를 읊조리는 듯한 존 웨튼(John Wetton)의 목소리가 멜로트론과 기타 소리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사람이 항상 진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이렇게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일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안에서 유일하게 '사유(思惟)'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오늘도 나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트로트나 아이돌 음악이 아닌 프로그래시브 음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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