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불편할 때 일어나는 것
여름의 온도는 서서히 뜨거워졌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 비가 내리다 말다. 날이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며
유난히 장난치는 듯한 날씨들이 이어졌다.
7월 초, 답답하게 묶여있던 더위가 한 번에 씻겨 내려갈 만큼 많은 비가 서울에 내렸다.
나는 그때 여름 몸살을 앓았다.
특별한 일 없으면 매일 도서관에 갔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스스로를 좌절감에 빠트리게 만드는 신문을 읽고. 주요 기사와 사설을 정리하고, 추천도서들을 겨우 하나씩 읽는 시간을 보냈다. 실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잠과 휴대폰에 허비했지만.
그런 내가 감기몸살이라니. 왠지 겸연쩍었다.
도서관 에어컨을 너무 빵빵하게 틀어서 걸릴 수도 있고 하루에 두 끼를 챙겨 먹는 탓에 영양소들을 골고루 섭취 하지 못해 걸릴 수도 있는 건데 백수라는 이유로 이 여름에 감기몸살 걸렸다는 사실이 그냥 멋쩍었다.
이틀을 앓아누웠고 몸은 더디 회복되었다.
몸이 회복되는 동안에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비가 오니 적적한 마음과 함께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것들이 한층 더 깊어졌다.
아파서 누워만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했고, 침대 위에서는 어디든 떠날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겨웠고 나는 이 지겨운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등산이 좋을 것 같았다.
등산하니 갑자기 한라산이 떠올랐다. 그동안 한라산을 생각하지 못하고 제주도를 떠올렸는데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는 다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혼자 가는 제주도는 나를 외로움의 벼랑 끝에 세워둘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내가 한라산을 떠올렸던 날들 동안 내내 비가 내렸고, 비가 오니 가고 싶은 마음(만)은 더 커졌다.
한라산을 혼자 등산하자 라고 내 머릿속에 떠올려 놓고 현실적인 부분들을 생각했고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는 동안 동네에 백수 2일 차에 접어든 친구가 놀러 왔다.
내가 한라산을 가고 싶다고 말하니 친구 역시 회사를 관두고 나면 등산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등산을 결정했다. 하지만 한라산은 아니었다.
워밍업으로 먼저 서울에 있는 산부터 가자며 관악산을 선택했다.
서울 생활 6년 동안 한 번도 등산을 가지 않은 나는 묘한 기대감이 생겼고, 정상에서 김밥도 먹자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헤어졌고 이틀 후 등산에 나섰다.
등산 당일, 처음 가본 서울대가 이렇게 넓고 높은 줄 몰랐다. (우리들의 관악산 등산 출발 지점은 서울대 공대 입구) 학교 참 넓다고 감탄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근데 정류장을 잘못 내렸다. 두 정거장을 미리 내렸는데 말이 두정거장이지 그때부터 우리의 산행은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10시 40분에 등산로 입구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초행인 우리는 등산복 입은 아주머니들을 따라갔다.
11시 30분. 정오 가까운 시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정말 많이도 쉬면서 올라간 정상이었다.
관악산 정상 '연주대'는 바위로 되어있다. 즉, 그늘이 없어 정상에 앉아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섭게 내리쬐는 정오의 땡볕 아래서 서둘러 정상 인증샷을 찍고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자두를 먹었다.
친구는 왜 김밥 파는 아주머니가 없냐고 나를 째려봤고 김밥 파는 아주머니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큰소리친 나는 허공을 쳐다보며 항상 산 정상에 있는 전설 같은 김밥 아줌마는 도대체 언제, 왜 사라진 건지 의문을 품으며 자두 씨를 산에 뿌렸다.
올라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다. '악' 들어가는 산은 '악'소리가 날 만큼 험하다는데 정말 그랬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이 올라온 길만큼 남았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과천으로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서울로 왔고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헉' 소리가 났다. '헉' 소리가 날만큼 뜨겁고 강력한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그날은 폭염주의보였다. 산 공기가 시원해서 몰랐다. 어쩐지 사람이 너무 없더라니.. 살아 돌아온 게 감사했다.
장장 6시간 30분 동안의 등산은 관악산에 영혼을 반쯤은 두고 온 느낌이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산을 마친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왔고 겨우 씻고 잠을 잤다.
등산 내내 나를 괴롭혔던 상념들이 미처 다 해결되지 못해서 그러하리라.
나는 등산이 나의 무언가를 바꿔줄 거라고 혹은 무언가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다.
그 무언가는 불투명한 미래도 되고, 불안한 마음도 되고,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모든 상태들이 된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꾸준히, 시간에 충실해야만 조금씩 보이고 해결되는 것들인데, 나는 자꾸 나를 보챘다.
빨리 내 눈앞에 나타나고 내 손안에 잡히길 바라는 마음이 내 현재를 앞질러 간 것이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게 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엉뚱한 곳에 맡기고 있었다.
"힘들게 산을 올라갔다 오면 변할 거야. 내 의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지금의 무기력도 우울도 극복하게 해줄 거야. 미래에 대해 확신과 용기가 생길 거야. 그럼 나는 그 용기를 따라갈 거야"라는 20대 초반 때나 빠져있을 법한 어리석음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마음먹은 일은 하면 되는데, 남들은 나름대로 다 잘 하는 그 일이 나는 잘 안됐다. 그렇게 잘 보내지 못한 시간은 지루함만 쌓이게 했고, 지루한 시간은 쌓이고 쌓여 내 몸을 아프게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것이지만 혼자 이끌어가야 하는 것들이 무거웠고, 귀찮았다.
귀찮아지면 미루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미루고 미뤄서 자기합리화로 흐지부지하게 만들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원점인 상태.
그렇게 살아왔다. 그게 편했으니까.
변화는 불편할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나의 삶이 불편하다.
항상 여기가 아닌 저기에,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나를 변화시켜줄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허황된 착각 속에 살았다. 착각은 착각이다. 착각 속에서 벗어나면 너무 못나고 지질한 나만 남으니까 그런 나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은 나를 비루하게만 만들 뿐이다.
뭣이 중헌 지도 모른 채 살았던 나의 삶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꿈꾸며 살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결과적으로 등산은 나를 변하게 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그럴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대신에 현실을 살게 되었다.
나를 깊이 파고드는 무기력과 우울은 여기에서 내쳐야겠다. 그 정도 힘이 생겼다.
등산이 내게 준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