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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묵상일기

오늘도 증인되신 성령님

요한복음 1:1-8

by 디모츄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저의 주인이시며 창조자이십니다. 저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소서. 주의 소유된 백성의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긍휼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소서. 어둠이 이미 있는 빛을 깨닫지 못하듯 어두워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선재를 알아차리지도,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맘을 밝혀 주시고 알려주사 회개하게 하옵소서. 광야같은 제 영혼에 외쳐주소서.


묵상

세례요한은 빛 되신 주 - 예수 그리스도 - 를 증언하여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하려는 사명을 가졌다(요1:6-8). 세례요한이 죽고 없는 시대에는 누가 이 일을 하는가? 첫째는 성령께서 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두번째로는 성령을 받은 이들이 그리하게 된다. "...진리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15:26~27)


그러면 예수와 함께 한 제자들이 죽고 없는 시대에는 누가 증언하는가? 제자들의 증언을 받아들여 새로이 제자된 이들이 동일한 성령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이 사명은 무한히 반복되고 확장된다. 그 첫번째 사건이 오순절 성령의 초임 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증언과 설교를 통해 3천명의 신도가 생겨난 것이며, 이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행2장). 심지어 제자된 이들의 전도와 증언이 아니어도 예수를 믿을 수 있기까지 한 것 같다. 사도행전에 보면 개신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사도 바울의 회심을 다루고 있는데,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을 처단(척살)하기 위해 가던 길목에서 환상 중에 예수를 만나고 회심하게 되었다. 그가 예수의 제자로서 훈련받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이 모든 것을 미루어 보자면, 나의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대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이 있으시다. 그분 스스로 증언의 주체가 되시며, 협력자를 찾으신 즉 그와 함께 또 동일한 일을 계속 해 나가신다. 심지어 아직 제자의 발길이 닿지 못한, 혹은 닿기 힘든 곳이라면 스스로의 권능을 사용하셔서 직접 증언하시기까지 한다(물론 이런 경우는 매우 희소하게 나타난다. 이로보아 하나님은 전자를 더 선호하신다고 생각된다).


내 가슴에도 여전한 불이 있다. 성령의 증언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 내 마음 내 행동이 상당히 잘못되었던 시기에도 그 분은 나를 떠나지 않으셨고 침묵으로 나를 지키셨다. 결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먼저 고백하진 자신의 말씀을 쌍방계약의 근거로 삼아 오늘도 나를 붙들고 계신다. 하늘의 사냥개! 그분의 굳건한 손을 표현한 어느 경건한 시인의 싯구가 떠오른다. 애초에 하나님은 포기하실 마음이 없으셨던 것 같다.


오늘도 내안에서 가르침을 주시고, 말씀이 떠오르게 하시고, 증언하시는 이. 나는 이분을 하나님의 보내신 성령이라 믿는다. 누구는 그저 정신작용이라 치부하고, 혹은 착란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변증변론할 마음은 없다. 변증은 무의미하다. 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세지를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변증이 아니라 증명이다. 즉 증인된 삶으로 드러내는 긴 시간의 소요, 거기서 빛나는 예수의 향기 외엔 하나님이 '계심'을 알리기 힘들다(기적과 신비현상조차 대개는 우연이거나 초자연적이고 무계획적인 자연의 당첨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생각이 멀리 뻗어나가는 것을 조심히 끌어당겨 다시 마음에 넣는다. 오늘의 양식에 족하고 계단은 한걸음씩 가야한다. 여전히 내 안에서 증인되시고 증언하시며 가르치시는 성령과 보혜사를 보내신 내주 예수,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 나의 주인이시고 아버지되신 하나님.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근거로 제 인생을 여전히 돌보고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덕분에 오늘도 성령께서 돌보시는 하루를 맛봅니다. 제게 주신 은사와 소명 안에서 저를 자라가게 돌보아 주옵소서. 젖먹이와 같은 심정으로 새로이 모든 것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흡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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