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3:16~27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니 너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 족속에게 나의 경고를 그대로 전하여라.(겔3:17/쉬운말)
군대에서 해안가를 지키는 초병으로 근무했었다. 4개의 소대가 석달 단위로 번갈아 해안가 소초에 투입됐고, 하루종일 순번대로 바닷가를 쳐다보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밤이면 T.O.D라는 야간카메라시설도 동원했다. 우리는 석달이면 다시 평지에 있는 원래의 부대로 복귀하지만 T.O.D 병사들은 제대할 때까지 소초에서 야간카메라로 감시하는 게 임무였다. 말하자면 나는 초병이자 경계병이었다.
꽤나 후방지역이라서 그런지 간첩이나 적군의 출몰은 없었고 간혹 밀항선이 발각되는 일은 있었다. 한번은 어촌계장이던가? 정확한 직함이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지역에서 방구깨나 끼는 아저씨가 다방 아가씨와 야밤에 경계지역(바닷가)에 슥 들어왔다가 우리에게 발견돼 동네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 수상한 사람 둘이 군사지역으로 들어온 탓에 부대가 즉각 출동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파수꾼'이란 말도 경계병 혹은 초병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영어로는 watchman 이라고 번역되었다. 경계병은 높은 곳(초소)에 올라 적의 동태를 살피고 우리 측 상황도 관찰한다. 관찰지역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것이 초병의 임무다. 아군에 위험할 만한 상황이 발생하는지 잘 살펴보다가, 작은 일이라도 발생하면 즉시 알려서 위험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해야 하는, 움직이지 않는 첨병(尖兵)인 셈이다.
그런데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시겠다는 오늘 성경구절을 보면 특이점이 보인다. 실제 파수는 하나님이 하시고, 에스겔은 전파자에 불과하다.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니 너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 족속에게 나의 경고를 그대로 전하여라."(겔3:17) 하나님이 먼저 보고, 먼저 파악하고, 발견된 문제점이나 상황을 에스겔에게 알려주면 에스겔이 이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사수(markman), 에스겔은 부사수(assistant) 정도 되는 거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파수자는 하나님이셨구나. 이스라엘을 누구보다 앞서 지키시는 자는 하나님이셨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는 말씀이 떠오른다. 정말이네.
그러면 파수자로서 하나님이 온 신경을 다해 보시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부대 건물을 등지고 서서 캄캄한 해안가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던 것처럼, 외부로부터 오는 무엇인가를 유심히 보고 계셨던 것일까? 그게 무엇일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온통 우리 쪽, 내부만 들여다보시는 하나님만이 발견된다.
"... 나를 대신하여 그 족속에게 나의 경고를 그대로 전하여라. 가령 내가 어떤 악인에게 말하기를 ‘네가 네 죄로 인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라고 했는데도, 네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게 경고하여 깨우쳐주지 않거나, 또는 그 악인을 말로 타일러서 그로 하여금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여 자기 생명을 구원받도록 경고해주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의 죄로 인해 자기의 죄악 가운데서 죽게 될 것이지만, 나는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네게 책임을 묻겠다..."(겔3:17~18/쉬운말)
3장 17절부터 21절까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전해라' 하시는데 전달의 내용이 모두 자기 백성을 향한 경고다. 악인에게는 악한 길을 벗어나라고 경고하고(18절) 의인에게는 악한 길을 피하라고 경고한다(20절). 에스겔은 거듭하여 '네가 그 경고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그들의 핏값을 너에게서 찾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는다(19,21절). 이로 보자면, 하나님의 경고를 전달하는 일은 대강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도 아니고, 매우 핵심적이고도 엄중한 일인 셈이다.
전달자는 그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는다. 야밤에 현관문이 열려있다는 파수꾼의 발견은 전달자의 입을 통해 즉시 당사자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 사실을 듣고도 문단속을 하지 않는다면 도둑이나 강도의 피해는 집주인의 몫이다. 그러나 전달자가 그 사실을 더디 전하거나 전하지 않는다면, 그 문책은 전달자에게 돌아간다. 듣고 안 듣고는 그의 몫이 아니고, 신속한 전달만이 그의 사명이다.
사실 에스겔같은 대단한 선지자라고 해도, 악인과 선인, 누구에게 벌어지는 일이 악한 일인지 좋은 일인지 정확하게 구별해 낼 눈은 없다. 에스겔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반복된 어투와 같이, 그도 그저 '인자(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대로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기 백성의 모든 것을 꿰뚫고 적확한 어떤 것을 전달할 능력이 인간에겐 없다. 들리는만큼 할 뿐이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할 뿐이다. 하나님도 에스겔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감안하여 돌보신다(겔4:13~15).
반면, 남이스라엘과 북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 소위 국정 선지자(요새 말로 종교지도자)라고 하는 것들은 위협의 요소를 온통 외부에서만 찾았고 해법은 승리한 과거에서 끌어왔다. 앗시리아가 침공하고, 바벨론이 밀고 들어와서 어려워졌다는 외부현상만 바라보고 짐짓 혜안이 있는 척 떠들었다. 우리 하나님은 강력하고 위대한 신이니 이 모든 걸 이집트 탈출의 때와 같이, 다윗왕국의 때와 같이 돌파하고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 사건들이 하나님의 심판이고, 하나님 자신의 의지임을 천명했다. 생각해보면 적은 언제나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남의 탓을 할 게 아니고 내 탓을 해야 한다. 심판은 내가 자초한 일이지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설사 첫 시작이 외부로부터 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처음부터 백성들의 파수꾼이 되셔서 피할 길을 항상 알려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를 보면 다른 나라와 국가들을 향한 이야기는 정말 극소한 분량을 차지한다. 대부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확실한 자기 백성들을 향한 말씀들이다(장차 자기 백성이 될 이들을 위한 말씀들도 포함해서).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파수의 눈길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향하여 있었고,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길은 외부에서 오지 않고 내부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빌리자면, 하나님 관점에서 신자가 망한다는 것은 외적인 성과와 형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죄악에 물들어 죽는 것이다.
악인은 회개하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고, 의인은 의로운 길을 벗어나 악을 행하다가 죽는다. 반대로 말하면 악인도 회개하면 살 길이 생기고, 의인도 눈 앞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악에서 도망치면 잘 살아갈 수 있다. 파수자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임할 때, 그 말씀을 받아들고 순종하면(듣고 따르면) 누구나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 안에서 신앙할 수 있는 오늘이 열린다. 설령 의인이라 할지라도 신앙의 길에 죄의 길이 도사린다는 사실이 엄중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파수하시는 하나님은 이 역시 아시기에 미리 경고하시거나 눈 앞에서 피할 길을 내신다. 이때 이를 따르는 자는 생명을 보존하게 된다. 그러니 신자라면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러 성령께서 전해 주시는 전언을 들어야 한다. 악인의 길에 들어섰다면 회개에 이르기 위해, 의로운 길을 걷고 있다면 그 길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악인도 듣지 않아 망하고, 의인도 듣지 않으면 망한다. 하나님의 탄식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백성 이스라엘 족속은 네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하여 고집이 아주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네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곧 내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겔3:7/쉬운말)
오늘도 말씀 앞에 서며 내 육신의 소욕과 갈등이 요동하는 것을 느낀다. 당면한 삶의 문제 뿐 아니라 소마(soma)의 몸부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 그럼에도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말씀을 폈다. 홀로 파수자되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오늘 너는 누구를 따르겠느냐고 말이다. 주님, 연약한 제 영혼이 주님께 의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해 주시는 겸손한 전달자, 성령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분의 성실은 언제나 내 영혼이 반응하든지 하지 아니하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지혜를 전달해 주셨다. 성령이야말로 에스겔이 모본 삼아야할 하나님의 대언자시며, 모든 말씀을 밝히 드러내 주실 교사이다. 그럼에도 부사수의 자리를 자처하시고 겸손한 영으로 자신을 숨기시며 아버지와 아들만 높이시니, 실로 삼위의 영광이 눈부시다.
이럴 때면,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누구도 알 수 없는 내밀한 것들을 갖고 기도를 할 뿐이다. 나의 의로운 파수자, 하나님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