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음의 길

by 문객

루머의 메일을 확인해 본다. 역시나 오지 않았다. 그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부여로 가보자. 부여에 가 루머에게 통화를 해, 지금 내가 부여에 있다는 것을 알리면 그를 향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게 되어 그의 행방을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차창 밖으론 푸르름을 더해가는 벼가 바람에 흔들거린다. 살랑살랑 누군가를 향한 설렘 같기도 하고 이제 갓 세상에 나와 엄마에게 재롱을 부리며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 같기도 하다. 흔들리는 벼 속에 마음을 묻어본다. 벽과 벽 속에서 미처 창문을 발견하지 못했던 마음에 바람이 분다. 하늘도 한여름의 푸르름을 품에 안고 더없이 높고 푸르다. 곳곳에 보이는 뿌리 깊은 나무들이 주변 마을의 풍경을 전하고 가끔씩 오고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행렬이 풍경의 외로움을 달랜다.


저 끝머리에서 흘러오던 백마강의 물줄기가 굽이 굽이 작은 시골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강줄기 한 곳에는 노를 저어 가는 사람이 보인다. 그의 굽은 어깨와 강물의 물결이 겹쳐 출렁거리는 윤슬 사이로 저녁노을이 빛난다. 건물이 없는 평야와 강줄기 속에는 오직 바람의 길만이 존재한다. 그 바람이 좋아 바람의 길에 마음을 맡겨본다. 아이들이 머무는 학교라는 공간도 이처럼 자유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가자는 대로 그렇게 자신들의 꿈을 향해 자유롭게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다른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자신의 능력과 재치를 발휘하면서 살아간다면 학교라는 공간도 저 강물처럼 굽이굽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백마강 바로 앞 구두레 조각공원에 도착했다. 조각상 앞으로 다가가 본다. 박수용의 향수라는 작품이 보인다. 드넓은 언덕 위에 한 사람이 언덕을 뒤로한 채 의자에 앉아 두 팔과 다리를 모으고 앉아있다. 갈망하는 그 눈빛이 마치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님의 눈빛 같다. 옆으로 발길을 돌리자 김지택의 사랑의 대화라는 작품이 보인다. 두 다리를 역동적으로 펼친 채 아이를 듬직하게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장엄하다. 마치 큰 전투를 앞둔 장군의 모습 같기도 하고, 내 아이만은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이 느껴진다. 더 아래로 발길을 돌리자 임선민의 관계라는 작품이 보인다. 굵은 선 몇 개가 서로 엉겨 붙어서 서로의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 가운데에 둥근 공간 하나가 보인다. 머리와 머리 사이 둥근 여백이 마치 복잡한 관계의 끝에 화해를 바라는 마음 같다. 작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조각상을 뒤로한 채 넓게 펼쳐진 백마강 앞으로 다가가 본다. 모래톱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백마강이 보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백마강을 따라 강변을 걸어본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는 연을 더 높게 날게 하고 싶어 줄을 잡고 정신없이 뛰어본다. 잠시 아이의 발동작에 맞춰 빙빙 돌던 연이 바람을 타고 비행을 시작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이제 연이 하늘 위 이곳저곳으로 마음껏 비행을 한다. 아이는 신기한지 줄을 계속해서 풀어준다. 연은 바람을 타고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아이가 웃는다. 아이의 웃음 곁으로 노을이 빛난다.


백마강 아래쪽으로 더 걸어가 본다. 한참을 걷다 보니 신동엽 시인의 시비가 보인다. 시비에는 그의 시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다. 이십 대 시절,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읽으며 분노로 가득했던 세상에 울분을 토해내던 시절이 있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며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 속에서 마지막까지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그런 삶을 살고자 했다. 백마강 한편에서 다시 그의 시를 읽고 있으니 지나간 청춘의 단면이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그 나이가 선물하는 풍경의 조각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조각들은 세월에 묻히게 되면 결코 다시는 되찾을 수가 없다. 혈맥을 타고 숨결을 거쳐 유일하게 그 순간에만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풍경의 조각인 것이다. 루머도 어쩌면 지금 십대라는 다소 힘든 시기를 거쳐가면서 그가 직면한 풍경의 조각 앞에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 참으며 너 자신은 잊고 오직 대학이라는 목적지만을 향해서 인내하며 걸어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할 때 그는 가두리양식장 같은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적 사유의 과정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좀더 강한 그로서는 그런 선택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가는 길을 벗어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탈이자 방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탈과 방황이 스스로의 내면적 가치를 찾기 위한 몸무림이라면 그 발걸음 자체를 단순하게 부정적 비판의 대상으로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교사로서 바라본 루머의 행동은 학교의 교칙에 의한 징계처리 대상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본 그의 방황은 흔들리며 살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위로와 공감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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