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루머야."
"그래, 루머야. 선생님께 말씀드리렴."
"네, 거기에 엄마가 있어서요."
"엄마가?"
"네"
"주왕산 어디 즈음에 계시는데?"
"선생님, 저희 엄마는 무당이에요. 그래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주왕산 버스 터미널 인근에 있다고 해서요."
"그래, 루머야. 내일은 동해 해안도로를 타고 어머니가 계신 주왕산 쪽으로 가보도록 하자. 어머니 주소나 연락처는 알고 있지?"
"네, 선생님. 고마워요."
"아니야. 여기 왔을 때 어머니 얼굴 보고 가는 것도 좋지. 걱정 말고 또 가보고 싶은 곳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렴."
"네"
"머루는 어디 가보고 싶은 곳 없어?"
"저는 괜찮아요. 선생님. 가다가 생각나면 말할게요."
"그래,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렴."
루머의 어머니가 무당이라고. 처음 듣는 말이다. 학교에서 상담할 때 그는 좀처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문제로 어떤 고민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괜찮다는 듯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기를 싫어했다. 그때마다 루머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여 늘 화제를 다른 이야기로 돌리곤 했다. 루머는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몇 번을 망설이고 내 앞에 '저희 엄마는 무당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지만 그리움 같은 것이 그의 마음 한 편에 늘 작은 씨앗처럼 돋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루머야, 괜찮아.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다 다를 수 있어. 피아노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고, 체력적인 면이 탁월한 사람은 운동선수가 되듯이, 너의 어머니는 영적인 측면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발달되어 있기에 그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봐. 무당이라는 존재도 결국은 사람이 선택하는 하나의 삶의 길이 될 수 있잖아. 루머야, 어머니의 존재가 부끄럽고 그런 것은 아니지?"
"네, 다만 그 문제로 어려서부터 아버지하고 갈등이 너무 심해서 집안에 늘 싸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결국엔 시골에 사는 친할아버지가 올라오셔서 이혼하라고 해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게 된 거고요.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그 길을 꼭 선택해야만 했는지, 가족을 위해 그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가 아직도 궁금해요.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신내림을 받았다고 하시거든요."
"그래, 아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 거야. 어머니도 분명 루머와 함께 가정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그 행복마저 외면하게 만든 더 큰 시련과 아픔이 있었겠지. 어느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버리고 그 먼 곳으로 가고 싶었겠니?"
"네, 선생님. 저도 그 부분은 공감해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머니라는 존재가 참 쓸쓸하게 보여요. 그리고 한편으로 혼자 남은 아버지도 안타깝게 생각되고요. 물론, 어머니를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늘 술에만 의지해서 상황을 벗어나려 했던 그런 모습이 지금도 너무 싫지만요."
"그래, 부모님은 아마도 너에게 말 못 할 그런 사연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래도 네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네, 선생님."
묵호항의 밤이 깊어간다. 별처럼 고깃배 위에 밝혀진 등불 아래엔 아직 분주한 작업이 끝나지 않은 인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머루가 김광석의 음악을 튼다. 하모니카 소리가 노래의 앞부분을 밝힌다. 그 소리에 창문 너머 수평선 위로 지지 않는 사람들의 희망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듯 뜻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핼 했었지 눈부신 햇살아래 이름모를풀잎들 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없이 꺠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가지
루머의 눈빛 속에 별들이 머문다. 잔잔한 바다 위에 떠있는 저녁별처럼 길을 찾는 별들이 루머의 눈빛 속에 하나둘씩 피어난다. 머루가 루머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깨 위에 손을 얹힌 채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작은 숙소 안이 잔잔한 물결처럼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