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과 함께 식당에 가 저녁밥을 먹는다. 사찰안에서는 식당에 들어가면 말을 해서는 안되기에 정숙한 표정으로 밥과 음식을 담고 조용히 자리에 가 밥을 먹는다. 두부조림, 김치, 각종 나물 등이 푸짐하게 차려있다. 밥을 먹는 내내 식당 안은 몇몇의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도 보이고 이제 갓 승려가 된 젊은 스님도 보인다. 가끔씩 고요함을 깨는 인부들의 소리만이 식당 안의 고요함을 깨운다. 루머와 머루도 묵묵하게 밥을 먹는다.
저녁 시간이 끝난 후에는 경내에서 진행되는 저녁예불에 참석해 범종소리도 들어보고 스님이 전하는 반야심경의 불경을 듣는 시간이 있다. 그녀는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밥을 먹은 후 진행되는 행사를 참관하고 반야심경의 불경을 듣기 위해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엔 몇몇의 사람들이 방석을 펼친 채 불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닌 우린 그저 한편에 앉아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다린다. 잠시 후 승복을 차려입은 스님 한 분이 들어오신다. 스님은 인사를 한 뒤 목탁의 울림을 통해 사찰안의 고요함을 깬 뒤, 그 청명함 속으로 반야심경을 낭송한다. 반야심경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목탁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스님의 불경 소리는 그 자체로 마음의 가락을 안겨주는 고요한 화음처럼 느껴진다. 잠시 스님이 전하는 소리에 취해 눈을 감고 내면의 마음을 바라다본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조금만 참고 있으면 감은 눈 사이로 내면의 마음이 보이게 된다. 때때로 그 마음은 잃어버린 추억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아픈 영혼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루머와 머루도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마음 여행을 떠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총 260자로 구성된 반야심경의 울림이 마치 하나의 음표처럼 마음속에 고요한 가락을 만든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잠시 후, 반야심경의 낭독이 끝날 즈음,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와 한편에 서서 우리를 바라본다.
"샘님, 너무 늦었죠?"
"괜찮아요. 어머님 덕분에 사찰 안에서 좋은 경험 잘하고 있어요."
"너희들은 여행 잘하고 있지?"
"네"
"샘님. 저기 대웅전 옆에 작은 암자 하나가 있는데 잠시 거기로 좀 가보게요."
"네, 어머님."
"너희들도 같이 가자."
그녀가 문을 열고 대웅전을 나서며 옆길로 향한다. 산속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벌써 바깥엔 어둠이 찾아왔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암자로 안내한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곱게 모으고 묵묵하게 암자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 위로 별빛 몇 개가 어둠을 밝힌다. 경내엔 가끔 시냇물 소리와 고요한 스님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깬다.
암자엔 촛불로 불을 밝힌 듯 주황색 불빛이 방안을 밝히고 있다. 그녀가 먼저 문을 열고 우리를 방안으로 인도한다. 방에 들어가자 스님 한 분이 불상을 바라보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 그녀는 말없이 옆으로 가 방석 세 개를 바닥에 놓아준다. 루머와 머루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가 내어준 방석 위에 앉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떻게 도량에서는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신지요?"
"네, 스님."
"선생님은 이곳이 처음이신가요?"
"아니요, 예전에 한번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스님께서 거처를 마련해 주셔서 며칠간 참 귀한 시간을 갖고 돌아갔습니다."
"네, 선생님에게 이 사찰은 어떤 인연이 있나 봐요. 이렇게 또 만나게 된 것을 보니."
"네, 스님."
"너희들은 선생님 제자이고?"
"네"
"당신도 편하게 앉구려"
당신이라고. 옆에 서있는 그녀에게 스님이 당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혹시 이 분이 머루의 아버지이신가? 당신이라는 말에 루머와 머루도 순간 당황한 듯 스님을 쳐다본다. 머루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졌기에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아버지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자리에 앉은 체 우리를 한번 바라다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염주를 하나하나 만지며 두 입술 사이로 조용히 마음의 언어를 풀어낸다.
정말 저 스님이 머루의 아버지일까? 잠시 방안엔 알 수 없는 정적이 쌓여간다. 머루는 '당신'이라는 두 글자에 고개를 숙인 채 더이상 스님과 그녀를 쳐다보지 못한다. 말못할 울분이 쌓이는 것인지, 잠시 후 머루의 얼굴 사이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