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템플스테이, 몇 년 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삶은 선택할 수 없는 방황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머피의 법칙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터지면서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서는 일상의 삶을 지속해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무작정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보고 싶었다. 그때 차를 타고 전국 이곳저곳을 배회하면서 머문다는 곳이 바로 여기 합천 해인사였다. 무작정 떠나왔기에 예약 같은 것은 하지 못했다. 다만 관리소에서 안타까운 사정을 너그럽게 이해해 그날 바로 머물 수 있는 방 한칸을 내주었다. 아직도 그 깊은 밤, 스님이 전하던 온화한 미소는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 며칠간 그곳에서 머물면서 스님이 전하는 불경 소리와 산사가 전해오는 풍경소리에 취해 심적 안정을 찾으며 다시 일상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왜 우리를 이곳으로 초대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리조트나 호텔도 아니고 사찰 속에 우리를 불러들인 것은 분명 무언가 전하고 싶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잘 닦인 지방도로를 한 삼십여분 가다 보면 보인다. 루머와 머루는 이곳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고등학생이라는 나이에 합천 해인사에서 전하는 마음 여행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지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 이곳의 풍경이 그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란다.
해인사 입구 관리사무소에 그녀가 알려준 이름을 말하고 사찰로 향한다. 아직 그녀는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는 해인사 내부의 경내를 잠시 구경하고 이정표가 표시하는 대로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곳으로 향한다. 가야산의 정기가 흐르는 듯 템플스테이 공간은 해인사 맨 위쪽, 가장 풍경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는 작은 방 안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템플스테이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청년이 이름을 말하자 법복 세 개를 내어주면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지켜야 할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오후 세시부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단한 교육이 있을 예정이니 그 교육에 참석해 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가 내어준 법복을 챙겨 각자의 방으로 향한다. 방안엔 침대, 책상, 옷장이 각각의 공간을 차지한 채 단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책상 위엔 불교와 관련된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예전에도 왔었지만 참 깨끗하고 편안한 공간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이 내어준 법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함께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며 해인사의 곳곳을 산책해 본다.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건물도 보인다. 꽤 높은 언덕 위에 바람의 길을 따라 조성된 듯 건물의 모습이 매우 웅장해 보인다. 그리고 꽤 많은 스님들이 끊임없이 경내를 오고 가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분주한 움직임이 보인다. 가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찰을 구경하며 대웅전 앞을 거닐고 있지만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스님들의 움직임이 사찰안을 더욱 가득 채우며 경내의 빛깔과 향기를 채우는 것이 좀 색다르게 다가온다.
경내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교육시간이 다가와 청년이 안내해 준 공간으로 향한다. 한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듯 교육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인들도 있고 젊은 커플도 보인다. 그리고 맨 뒤쪽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자녀와 함께 참여한 가족의 모습도 보인다. 모두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이곳에 온 듯 차분한 자세로 교육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나이가 꽤 지긋한 분이 해인사를 알리는 영상과 함께 등장해 앞으로의 일정과 사찰안의 주의사항 등을 말씀하신다. 사찰은 수행공간이기에 고성방가를 삼가하여 주시길 바라며 도량을 거닐 때는 항상 두 손을 모으고 걸으며 도량에서 스님과 마주치면 합장 반배 인사를 해야 함을 주지 시켜 준다. 그리고 21시 이후는 사찰의 일정에 따라 취침에 들어가야 함을 강조하면서 사찰 안에 머무는 일정이 모두에게 부처님의 큰 자비 아래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마무리 인사를 전한다.
이제부터 저녁 식사까지는 자유시간이다. 그녀의 연락이 아직 오지 않는다. 몇 시 정도 올 것인지 미리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녀에게서 먼저 전화가 오기를 기다려 본다. 운전 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기다려본다. 루머와 머루는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잠시 경내를 거닐다 방으로 들어가 여정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한다. 사립문을 타고 밖의 햇살이 방바닥에 문양을 만든다. 어딘지 모르게 그 햇살이 좋아 문을 활짝 열고 방바닥에 누운 채 밖으로 펼쳐진 나무와 하늘을 바라본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의 움직임이 마음에 가을바람 같은 여행의 분위기를 심어준다.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왔을 나무의 웅장함에 잎새들이 가냘프게 움직인다.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해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그녀의 전화다.
"샘님요, 어떻게 도착은 했나요?"
"네, 어머님. 저희는 잘 도착해서 이곳 안내에 따라 교육도 받고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저녁 식사 때까지 쉬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곧 도착할 거 같아요. 그럼 있다가 만나게요."
"네, 어머님"
그녀도 거의 다 온 것 같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간단하게 이곳에서 진행되는 저녁 행사에 참여하고 그 이후에 숙소로 가 자유시간을 갖은 다음 취침에 들게 된다. 아직 저녁식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루머와 머루는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 그들의 방 안으로 향한다.
"머루야, 뭐 하고 있어?"
"네, 그냥 쉬고 있어요."
"머루야, 어머님도 거의 다 왔다고 하시네."
"네, 선생님 혹시 엄마가 왜 이곳으로 우리를 오라고 했는지 아세요?"
"글쎄, 선생님도 잘 모르겠어."
"그러게요. 왜 하필 해인사일까요?"
"어머님이 자주 다니는 절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너희들에게 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잖아."
"그래도 이건 여행은 아닌 것 같은데요. 너무 분위기가 엄숙하고 갈 곳도 없고 구경할 것도 없잖아요."
"그래, 오늘은 그냥 마음 편하게 쉬고 간다고 생각하자."
"네, 선생님."
"루머는 뭐하니?"
"예, 선생님. 그냥 심심해서 핸드폰 좀 하고 있어요."
"그래, 루머는 좋아하는 게임 있어?"
"아니요. 저는 게임을 잘 못해요. 게임하려면 복잡해서 못하겠어요."
"복잡해? 재미있지 않고?"
"네, 그냥 저는 별로 재미없고, 복잡하기만 하더라고요."
"그래, 그래도 우리 루머는 다른 멋진 취미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
"선생님, 불교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뭐예요?"
"글쎄, 결국은 마음의 평온함 아닐까?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많은 고민과 걱정 등이 생기잖아. 어떤 사람은 그 고민 때문에 너무 힘들어 삶을 그만 두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상처 때문에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원망하며 살아가잖아. 선생님 생각에 불교는 이러한 아픔과 상처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그런 종교인 거 같아."
"네, 선생님. 그런데 불교는 너무 어렵기만 한 거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도 이야기해 주셨듯이 인간의 욕구, 욕망이 꼭 부정적인 결과만 나타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욕망을 비우라고만 하잖아요."
"맞아,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더욱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그런데 그 욕망에만 지나치게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오히려 그 욕망의 충족은 더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야."
"네, 선생님. 그래도 불교의 길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 루머야. 선생님도 가끔 멀리서 이 길을 바라보지만 스님의 길을 간다는 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일 거야."
거의 다 왔다고 했는데, 아직 그녀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간다. 루머와 머루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식당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