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4차 산업혁명 속 자아찾기
4차 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창시자 중 한명인 클라우스 슈밥이 2015년에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할 때만 해도 우린 4차 산업혁명이란 그저 낯선 미래의 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19라는 전지구적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멈춰버린 3차 산업의 구조를 4차 산업으로 빠르게 재편하는 과정을 통해 4차 산업의 미래풍경을 보게 된 것이다. 학교, 기업 등 대면적 공간만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교육과 산업이 비대면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음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미래사회의 모습은 인간과 인간의 대면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과 정보 속에서도 충분하게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를 낳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유전자 재조합기술, 빅테이터, 드론, 5G, 나노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지금도 곳곳에서 서서히 밀려오며 세상의 구석구석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신기함과 설렘을 맛보기 전에 벌써 상상 속에서나 꿈꿀 수 있는 플라잉카가 등장했다. 생명공학의 기술 또한 놀랄 만큼 발전하여 이제 질병은 치료가 아니라 미리 진단하고 예방하는 관념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전자 가위기술의 발전은 앞으로 미래사회에 생명공학의 기술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을지 두렵기까지 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제니퍼 다우느나 교수는 2012년 게놈 편집 방법인 CRISPR-CAS9라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것은 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데 D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해 해당 부위의 DNA를 절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술이 상용화 될 경우, 농축 산업에서의 종자개량의 활성화는 물론 멸종동물 복원, 유전자 희귀병 치료, 동물장기이식, 암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적인 물결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맞춤형 아이 생산’이라는 극단적인 상황도 보게 될 것이다.
AP통신과 중국 현지 언론 등 외신들에 의하면 29일 중국 선전남방과학기술대학의 허젠쿠이(賀建奎) 교수는 지난 26일 유전자 편집기술로 탄생시켰다 밝힌 여자 쌍둥이 외에 또 다른 유전자 편집 아기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허 교수는 제2회 국제 인류유전자편집회의 개회를 하루 앞둔 26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여자 쌍둥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의 연구팀은 불임치료를 받던 부부 7쌍에게서 배아를 얻어 연구에 이용해왔으며, 이는 남방과기대의 허가를 얻고 한 연구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이현우 기자. <中 유전자 조작 아기 탄생, '제조인간' 시대 도래하나...영화 '가타카'가 현실로?>.<<아시아경제>> 2018.11.29.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변화는 거대한 산업의 구조는 물론 작은 우리의 일상조차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문 앞에 배달되던 신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극장에 가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던 추억도 이젠 넷플릭스를 통한 집안의 문화로 변해가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마주하고 이야기하며 삶의 대부분을 대면 속 만남을 통해 살아가던 것이 이젠 인터넷이라는 비대면 공간 속으로 많은 것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면 공간 속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은 소외감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생산성 또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산출되는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무겁고 거대한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해야 이득을 얻는 산업방식에서 벗어나 무형의 정보기술이 우리 삶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모든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스마트폰은 거의 우리 삶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경제, 문화, 교육, 산업, 취미 등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은 더없이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든지 기술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든 만큼 기술은 그에 맞먹는 부작용과 해악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린 변화에 무조건 추종하기 보다는 그 변화가 가져올 기술의 사용에 대해 냉철한 가치판단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요나스의 지적처럼 윤리적 공백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성찰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커다란 불행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1998년 개봉한 SF 영화인 ‘가타카’속의 세상이 정말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은 과학기술의 축복이기 보다는 신이 정한 창조의 법칙이 모두 깨진 채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공지능 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지구에서 영원히 추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 의존형 인간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의존이 심화될수록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통해 얻게 되는 소중한 가치가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에 기술의 발전을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관점도 있지만 기술은 ‘얻는 것을 위해 잃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 아니라 되도록 ‘잃지 않고 얻는 것을 지향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기술은 인간 삶의 희망이고 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술은 절대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로만 움직여서는 안 된다. 기술을 선점해야지만 미래사회에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기술개발에 대한 가치판단을 희석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가치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등장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멈출지 모르고 계속 경제논리로만 각종 산업에 대한 계획을 편성하게 된다면, ‘가타가’와 같은 불행한 현실은 정말 우리 앞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술은 결국 그 무엇이 아닌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못하는 기술은 인간에 의해 개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행복과 희망을 전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나, 이 둘 사이의 간격은 분명 미래사회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욱더 스스로의 가치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라는 존재도 결국 기술의 한 부분이 되어 움직이게 될 지도 모른다. 인간 보다 더 인간화된 로봇이 더 인간처럼 거리를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공부를 가르치고 환자를 진료한다면 그곳에 나라는 존재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그 기술을 얼마나 인간화하여 우리 곁에 두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 따라서 기술 앞에 우린 늘 참된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지속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기술이 기술만능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가치판단의 자세를 가지고 기술을 인간의 삶과 조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술의 가치는
기술이 결국 인간화의
길을 걷게 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넘어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순간
기술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재앙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