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
모든 것의 시작은 이러하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무것도 없는 늪,
끝없이 깊은 공허,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하나님의 영은 물의 심연 위에 새처럼 내려앉으셨다.
(창세기 1:1~2, 메시지 모세오경)
창세기 1장 1절~2절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말씀을 모르거나,
또는 믿지 않는다면 그는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하고, 진부하다고 느끼는 이 말씀에 대하여
생돔감 있게 설명한 사람이 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창세기 1~3장 주석에서,
세상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우리의 철학, 지성, 사유는 힘을 잃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시작점에 서 볼 수도,
그 시작점 전에 존재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 무력감은,
그가 계시다는 것을
그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을 때,
삶의 공허함과 어둠이 짙어지는 그런 때에 찾아온다.
보이는 것을 쫓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은 힘에 겹고 고단하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모세오경에서 다른 번역본에는 없는 부분을 추가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유추해 보자면 그는 보이는 현실의 벽에 좌절한 사람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된 사람들을 독려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본회퍼가 말했듯,
세상의 시작이 그렇듯, 내면의 끝없는 공허와 어둠 앞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우리의 공허와 어둠을 품으시고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가 빛이 있으라고 하시면 빛이 생겨난다.
하지만 그는 먼저 우리를 그저 품으신다.
공허와 어둠에 빛이 비쳐지기 전,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안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
그분의 질서와 생명이 피어나기 전,
그는 또다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기 위해 공허와 어둠을 품으신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창조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