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소위 ‘영화관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우는 극장에서 스크린, 비상구, 좌석 표시등 외에 나오는 모든 불빛을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항상 상영관에 들어오자마자 휴대전화 전원을 껐다.
화려하고 지루한 상업 광고 몇 개가 지나가는 동안 날카롭게 부서진 마음의 날붙이들이 비강을 찔러 콧날이 시큰해졌다.
오랜 연인인 보연에 대한 원망, 걱정 등이 뒤섞인 불그스름한 마음을 직시할 틈도 없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상우가 영화를 좋아하는 큰 이유는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잡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려운 영화를 볼 때에는 미흡한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더욱 컸다.
‘가르강튀아 블랙홀’이니 ‘중력 방정식’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일상과 거리가 먼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하고자 애쓰며 영화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상우는 영화에 흠뻑 젖어들었다.
상우는 우주에 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지구’에 대해 표현했던 구절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럴 때면 이 작디작은 지구,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본인의 고민이 무척이나 하찮게 느껴져서 머리를 때려대는 답답함이 이내 연무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우는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야 상영관을 나오곤 했다. 영화인도 아니고 제작자도 아니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본인에게 값진 2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애썼을 모든 이들을 존중하는 예의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상우는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를 되뇌며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한 우주여행을 하고 나온 그를 맞이하는 한낮의 육중한 태양빛은 그를 좌절시켰다.
우주적 관점에서 사소한 그의 고민일지라도 결국 그에게는 우주와 같은 문제였다.
‘날씨가 참 좋네.’
혼잣말을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휴대전화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 5통,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10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신자는 모두 그의 연인, 보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