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걷다 보면

느릿한 시선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by 글쓴이

'동네'라는 말은 동내(洞內) 즉, 마을 안쪽 지역을 뜻하는 한자어가 변용된 표준어이다.


본인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도보로 걸을 수 있는 생활권을 이르는 보통명사이지만, '동네'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안정감이 들고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라는 말이 '인간'이라는 단어보다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동네'는 사전적 유의어인 '근방'보다 훨씬 다정한 느낌이다. 꼭 '철수네', '영희네'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첫째 아이를 낳고 약 100일 정도가 지난 뒤 우리 가족은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나는 어릴 적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워낙 많은 이사를 다녔던지라 내가 아이를 키울 때에는 가급적 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아이에게 '우리 동네'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현재 사는 동네에 전혀 연고가 없지만 8년에 가까운 시간을 얹으며 살고 있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마다 정을 떼어다 붙이면서 두턴운 모자이크화를 만드는 중이다.


그 와중에 둘째 아이도 태어나면서 거주지였던 이곳이 한층 더 의미 있는 '우리 동네'가 되어감을 느낀다.


생활인으로서의 삶은 대개 비슷한 패턴을 지닌다. 퇴근 후 아이들과 아파트 내의 놀이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거나, 동네 상가의 병원, 마트 등을 이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마련이다.


그렇게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곳만 알았던 시간들이었다.


육아휴직자의 삶을 택한 뒤 일상은 많이 변했다.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킨 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산책한다.


재수도, 재수강도 없이 번개처럼 지나갔던 대학시절, 교직 임용 후 13년 간 온갖 부서를 돌며 정신없이 배우고 가르치던 교직생활에 쉼표를 찍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 동네'를 느긋하게 걷는 시간을 꼭 가져본다.


지구에 처음 온 외계인처럼 모든 풍경에 시비를 걸듯 뚫어지게 쳐다본다.


생물학자인 아내에게 매번 지청구를 먹는 박약하기 그지없는 식물에 대한 지식이지만, '아무렴 어때?' 하는 자신감을 가져 본다. 봄볕으로 보양하여 색이 고와진 풀과 꽃, 나무를 또렷하게 응시해 보며 그것들에게 세상에 없던 이름들을 붙여본다.


아내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꽈배기 가게에서 판매하는 생도넛을 좋아한다.


사장님에 따르면 꽈배기와 찹쌀 도넛을 만드는 것보다 생도넛을 만드는 것이 훨씬 많은 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이 동할 때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그래서 아내도 몇 차례 구매를 실패한 이력이 있다.


오픈런도 의미가 없는 생도넛과의 밀당에서 두어 번 실패를 맛본 며칠이 지났다. 도넛을 살 계획이 없이, 그저 산책할 요량으로 아무 생각 없이 꽈배기 가게 앞을 스치고 있는 찰나에 사장님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오늘은 생도넛 만들었는데, 안 사요~?'


마흔이 넘으면 사람이 본인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 조금씩 알 것도 같다.


노사장님 부부가 쾌활하게 웃을 때는 항상 눈가의 주름이 공손하게 시중을 들었다.


그것은 사람이 나이가 들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부산물이 아닌 다정함의 깊이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시고 멋쩍게 웃으며 뒤돌던 생도넛 구매 실패자의 얼굴을 기억하시곤 가게 문까지 열고 나와서 나를 불러 세우신 것이었다.


'아니~ 아내가 생도넛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오픈하고 밖을 보는데 아저씨가 딱~ 지나가는 거 있지~ 운이 참 좋으셨네!'


'와~ 사장님 감사합니다. 제가 참 여러모로 운이 좋았네요. 동네 산책할 겸 나온 것이라서 혹시 몰라서 챙긴 5천 원이 전부였거든요. 딱 2인분 사갈 수 있네요! 오늘 로또라도 사야 하려나 봐요.'


'아이고 같은 동네 사람인데 돈 깜빡하면 뭐~ 떼먹을 건가? 다음에 주면 되지~ 그렇게 좋아해 주니 내가 더 고맙지! 자주 만들어볼 테니까 자주 와요~'


도톰하니 탐스러운 생도넛이 약간의 설탕을 입은 뒤, 종이봉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나도 사장님 부부 내외처럼 친절함을 한 땀을 새겨보고자 힘껏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일하는 중인 아내에게 문자를 남겼다.


'오늘 생도넛 샀어요! 애들 간식으로 주고 당신 것도 챙겨 놓을 테니 이따 먹읍시다!'


'오예! 고마워요!'


아파트 초입에 만개한 벚꽃 나무들이 쭉 이어진 광경이 꼭 동화 같았다. 슬쩍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 잎이 느긋하게 나부끼는 광경이 참 예뻐서 눈에 힘을 좀 덜고 느릿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따라가 보았다.


집에 가서는 바로 창문을 활짝 열어 동네에 가득 차 있는 신선함을 집 안에 채워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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