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하영 고맙수다게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미국의 작가 앨버트 허버드는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줄 때는,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는 뜻으로, 시련과 역경에 주저앉지 말고 긍정적인 힘으로 극복하라는 뜻이다.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영문 제목이 바로 저 명언에서 본 딴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이다.
감귤이 유명한 제주도의 특성을 따서 Lemons를 Tangerines로 대체한 참 영민한 제목이다.
잘 익은 감귤은 참 새콤달콤하여 맛이 좋지만, 설익은 귤이나 하귤은 시고 떫어서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북제주군에서 태어난 1951년생 오애순의 유년기 이야기는 어찌나 시고 떫은지, 그 징그러운 향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바람에 콧날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아려 혼났다.
그러나 결국 본인 손에 들린 깡깡하고 억센 귤을 썰고, 절여서 기어코 귤청을 담가 소담스레 내놓는 모습을 보며 어느새 들숨과 날숨이 가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우직한 사랑이 촌스럽지 않고, 성실한 모습이 어리석지 않으며, 이웃을 향한 관심이 오지랖이 아니었던 시절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사연 있는 사람처럼 오열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는 '현대화'되고 '진일보'한 오늘날의 '사랑'에서 강한 감미료 맛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엄마가 끓여주신 투박하고 깊은 된장국을 맛본 느낌일 테다.
'유채꽃이 혼자 피나, 꼭 떼로 피지.'
마을 공동체의 끈끈한 유대가 산업화의 파도 앞에서 해체되는 과도기에서도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100리 길도 10리 길 된다.'며 '천애 고아' 애순의 눅눅한 그늘에 기어코 볕을 쪼이고야 말던 아랫목 같은 마음에서 늘 그리운 할머니의 무릎 냄새, 할아버지 댁 장롱 속 이불 내음이 났다.
콩쥐를 돕던 두꺼비, 소, 선녀, 참새 같던 '이모'들과 때로는 모질었지만 악하지는 않았던 '괸당'들이 애순의 삶에 내리쬐는 꽈랑꽈랑한 여름볕을 막는 그늘막이 되어 주었다.
'엄마는 어쩜 일평생 소녀야?'
가슴을 치는 수많은 명대사의 향연을 뒤로하고 내게 가장 저릿했던 말은 칠순이 넘고도 여전히 문학소녀처럼 사랑스러운 엄마를 향한 금명의 대사였다.
'엄마는 어쩜 일평생 소녀야?'
이것은 아버지 관식을 향한 소리 없는 찬사
일말의 꼼수도 없이 또박또박 걷는 딸깍발이 같은 양관식의 무쇠 사랑이 오애순을 일평생 소녀로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서랍에 가득하고도 남는 꽃 머리핀을 하고, 대충 부는 바람에서도 계절의 향기를 느끼며, 타는 저녁 노을을 보며 감동할 수 있도록, 무쇠가 요망진 소녀를 지켰다.
그래, 이것이 사랑이었지.
100개를 가지고 있으면 101개를 주고 싶은 마음은 호구가 아니고 사랑이었지.
아까운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 말하는 것이 사랑이었지.
용두사미의 아쉬운 작품들이 범람하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끝까지 방향타를 잡고 만선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어 하영 고맙수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