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아하던 음식이라 할지언정 단 한 번의 안 좋은 기억만으로 영영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베트남 쌀국수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외식할 기회만 있으면 베트남 음식 체인점으로 향했다. 길거리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쌀국수 국물을 저렇게 테이크 아웃해 줄 순 없을까 상상까지 하곤 했다. '외식=베트남 쌀국수' 루틴을 충실히 지킨 어느 여름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심한 복통이 찾아왔다. 무더운 날씨였다. 배탈일까. 약간 쉰 냄새가 나던 쌀국수 숙주나물을 짙은 국물 향으로 애써 잊으려 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그렇지만 내 몸에 다년간 누적된 임상 경험은 그런 복통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응급실을 찾았다. "맹장염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응급실을 비롯한 여러 병원의 오진이 이어졌고, 한 달 이상을 생으로 앓다 결국 맹장을 떼내는 수술을 했다.
한 달 넘게 '맹장통'을 앓았던 그 여름의 기억은 지독했다. 상식적으로, 베트남 쌀국수가 맹장염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베트남 쌀국수를 향한 열렬한 애정을 잃었다.
회는 잘 먹지 못해도 연어 초밥은 좋아하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연락도 없이 연어롤을 사서 기숙사에 찾아왔다. 방금 저녁을 먹었기에 한 점만 집어 먹고 나머지를 어찌 해결해야 하나 고심했다. 기숙사 공용 냉장고는 학생들이 넣어두고 찾지 않아 서서히 상해 가는 음식과 이미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식품이 가득했다. 무척이나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냉장고 안을 부유하고 있을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잘 막아주길 바라며, 플라스틱 용기를 랩으로 한 번 더 정성껏 봉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깨끗한 냉장고여도 회를 하루 이상 보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다음날 조심조심 섭취한 연어 롤 두 조각에 심한 두통과 구토로 이틀을 시달렸다.
그토록 좋아했던 연어 초밥과 연어 롤도 베트남 쌀국수와 함께 굿바이.
살면서, 서서히 흥미를 잃는 것들은 있었지만 좋아했던 무언가가 한순간에 싫어진 적은 없었기에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한동안은 그 메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뚝 떨어졌다. 몇 년이 지나고부턴 식사 자리에 있으면 몇 입 먹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본연의 맛을 즐길 순 없다.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미각이라는 건 어쩌면, 꽤나 감정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 쌀국수나 연어 롤은 다른 어떤 물건, 혹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쩌지. 그렇게 좋아하던 대상을, 그렇게나 좋아하던 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만 떠오른다면 어쩌지. 내게 누군가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된다는 것도 슬픈 일일 테다. 많이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쌀국수나 연어 롤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삼십 대의 나는 태국 쌀국수의 세계에 진입했고 아삭하게, 때로는 오독오독 씹히는 다양한 회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십 대의 나는 또 어떤 것을 새로이 사랑하게 될까?
남은 날을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가, 누군가가 싫어지는 대신 더 많은 것이 새롭게 좋아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