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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학교, 긴 이별

by 박영윤

어제는 딸의 마지막 중학교 날이었다.


3월, 봄이 막 시작되던 거룩한 입학식,

교복을 입히고 설렘 가득한 얼굴로 함께 복도를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딸은 학교를 무척 사랑했던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돌연 아이의 "등교 거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사춘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학폭에 해당되는 명확한 ‘폭력’이 아닌

조용하고, 교묘하고, 은밀하고, 잔인한 방식의 괴롭힘이 있다는 걸.


눈앞에서 대놓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뒤돌아선 순간 웃으며 수군대는 소리.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짝이 사라지고, 그룹의 대화에서 조용히 제외되는 일들.

누구 하나 증명할 수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

아이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졌다.


미안해"

"내가 문제야"

"내가 잘못했어”

어느날부터 자존감 낮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살던 딸.

불을 뿜는 새끼용마냥 당차고 당당했던 아이는

어느새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더 망가지고 나서 후회할래?”

그 말은 나의 절박한 외침이었지만,

사실 나조차도 아이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공교육을 믿고 살아온 교사인 남편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담임 선생님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눴지만

그 어디에도 해답은 없었다.

공교육 시스템은 이 아이의 감수성을

받아줄 여유러운 구조가 아니었다.


이 아이는 느리지만 성실하게 해내는 인내심이 있고,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알며,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집중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강점들은

‘공동체 안에서 튀는 아이’라는 낙인이 되어버렸다.


태어날 때도

인큐베이터 너머에서 아이를 안아보지 못해

하루하루를 마음 졸였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이 아이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3년만 다르게 살자.”

다시 고등학교에서 공교육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딸과 함께 '단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다는 학교'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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