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울증

만성우울증에 관하여

by 백향목


어느 날 아침,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숨을 쉬는 속도가 빨라졌고 버거웠습니다. 전날부터 두통도 있었고 설사도 계속해서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흡이 잘 안되는 건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좀 심한 몸살이겠거니 하며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하루 종일 몸을 회복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온수 매트의 온도를 올리고 비타민 듬뿍 담긴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밥도 꼬박 챙겨 먹고 감기약도 먹었습니다. 카페인 부족에 의한 것일까 봐 커피 한잔도 빼놓지 않았고요. 그런데 평소와 달리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도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이미 다 닫힌 시간이었고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약국뿐이었습니다. 밤 11시에 문 닫을 채비를 하시던 약사님을 붙들고 증상을 설명드렸습니다. 약사님은 일단 청심환을 먹어보고 그래도 괜찮지 않으면 내일 병원을 찾아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청심환을 먹고 한 시간 뒤 놀랍게도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두통도 사라졌고 설사도 멈췄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몸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제 마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게 일어났던 증상은 ‘우울증으로 인한 발작’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정신건강의학과 설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이름입니다. 만성 우울증이랍니다. 만성 우울증은 처음 들어보시는 분도 계시죠? 우울증은 급성이 있고 만성이 있대요. 급성은 최근 급격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우울증상인데 이 급성우울증은 자기 스스로 우울하기 전의 상태를 기억하기 때문에 돌아갈 곳을 아는 병이랍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만성 우울증은 자기가 언제부터 우울해진 것인지 기억하기가 어렵답니다. 그냥 그게 자기 성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밝은 모습을 그려내기 어렵대요. 그래서 사실상 이전으로 돌아가는 회복의 개념이 아니라 우울을 벗어난 새로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재탄생의 과정이어서 더 어려운 병이랍니다.

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울해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밝았던 때를 찾아가는 게 어렵습니다.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저를 찾는 일을 멈추려 합니다. 법륜스님이 강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지나간 과거는 꿈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꿈이다.” 지나간 과거는 지금까지 저란 존재의 형성에 결정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앞으로는 저를 형성하는데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합니다. 여러 상처, 여러 사람의 배신, 비난, 무시, 또 한편으로는 사랑까지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왜곡과 비틀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더라도 앞으로 만나게 될 나는 새로운 나입니다. 앞으로의 나에게 유의미한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움직임들입니다.

저는 우울증약을 먹다가 끊었었습니다. 약에 의존하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우울증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약을 먹으면 그날 하루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가 순간순간 감지할 정도로 저의 액션에 생동감이 생기고 말에 유머가 실립니다. 전 재미있는 사람, 밝은 사람,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약의 도움도 받아보려 합니다. 약에 의존하는 것은 싫지만 약의 도움을 받아서 내가 하루라도 기쁘게 살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것 같아요. 제 하루는 소중하니까요.

저는 이제 새로운 저를 찾아갑니다. 나이 34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인데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날이 하루여도 그 하루를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이제 내게 주어진 남은 삶을 따스하게 울고 웃으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단 하루도 우울감에 사로잡혀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전 요즘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입니다. 우리 삶에 존재하는 여러 불안을 이겨내는 힘이 철학에 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그 책에서 말하기를 쾌락주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피쿠로스가 그랬대요. “의학의 경우, 육체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면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듯이 철학 역시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사람을 잃을 것에 대한 불안, 내 삶이 어긋날 것 같은 그런 여러종류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발목에 힘 꽉 주고 힘차게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를 잃어버린 어제를 마치고 의학과 철학을 통해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나의 꿈이며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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