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현장 담긴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보다.
물리학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는 걸까. 아마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래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무엇을 하더라도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나라 전체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많은 것이 변화해 가는 때에 확실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영상테마파크 입구에는 가호역이라는 공간이 있다.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만든 이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내부에 걸린 시계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연출이 되어 있어 마치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암시하는 듯하다.
가호역을 지나면 일제강점기의 경성 거리가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차다. 이 전차는 드라마 경성 스캔들 촬영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조선 고종 시기에 서대문에서 홍릉까지 운행했던 전차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전차는 동화백화점과 반도호텔 등 경성의 주요 거리를 지나가며 짧지만 인상적인 시간을 선사해 준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아직 의미를 가지고 있던 시대, 적어도 20세기와 1980년대까지는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컬러 TV와 냉장고, 세탁기 하나만 있어도 삶이 충분히 풍요롭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AI가 가장 큰 화두가 되고 미래에 우리 곁에 자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로 떠나보는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합천에 자리한 영상테마파크라는 곳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걸어볼 수 있는 거대한 세트장이다. 곳곳에 만들어진 거리와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1980년대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이 활용되어 왔다. 드라마 〈각시탈〉, 〈빛과 그림자〉, 〈에덴의 동쪽〉, 〈경성 스캔들〉, 〈서울 1945〉, 〈TV소설 삼생이〉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가운데서는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마이 웨이〉 같은 작품들이 촬영되었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방송사와 OTT, 종합편성 채널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을 보면 묘하게 다른 색깔이 느껴진다. OTT 작품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종편에서는 가끔 인상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전통적인 방송사 드라마는 조금 더 고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 거리를 걷다 보면 드라마 속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화면 속에서 배우들이 뛰어다니던 거리와 골목이 실제 공간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는 역사 속 장소를 재현한 건물들이 이어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 이승만 대통령이 거주했던 이화장,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귀국 후 잠시 머물렀던 돈암장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돈암장 남쪽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담은 적산 가옥 거리가 있다.
군산이나 포항 구룡포에서 볼 수 있는 갈색 적산 가옥과 비슷한 분위기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드라마 〈각시탈〉에서 각시탈이 등장하던 장면 역시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면 수도경찰청, 종로경찰서, 혜민병원, 경성고보, 서울역 등 당시의 주요 시설들이 재현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긴장된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공간들이기도 하다.
경성역을 지나면 1960년대 서울 풍경을 재현한 세트장이 이어진다. 남영역 철교를 중심으로 배재학당, 중앙우체국, 국도극장, 원구단, 한국은행 등 당시 건물들이 이어진다. 영화 〈써니〉와 〈전우치〉 역시 이 공간에서 촬영되었고 한다. 합천영상타메파크의 기차역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라고 한다. 장동건과 원빈이 가족과 이별하며 전쟁터로 떠나는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상테마파크 곳곳을 걸어보면 오래된 것 같지만 낡지 않은 공간과 새로운 것 같지만 익숙한 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낯설지가 않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종종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처럼 과거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일반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배우들은 촬영을 통해 그런 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조금 부럽기도 하다.
이곳을 천천히 걸어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의 시간은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갔던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보는 넘쳐나고 미래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합천에 자리한 영상테마파크는 그런 시간의 흐름을 직접 걸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의 가상공간이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곳을 천천히 걸어보며 시대의 흔적을 느껴보는 여행. 그 속에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동시에 체험해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