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물빛복합문화센터에서 봄에 만나는 전시전 나는 그런 모양이었다.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사람에 따라서 모습을 보기도 하고 모양을 보는 사람도 있다. 모양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꼴을 본다고도 한다. 우리가 타인을 인식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외형이 모습이다. 기억 속에서도 비교적 또렷하게 재현되는 형태로 말 그대로 보이는 것에 가깝다. 모양은 그보다는 조금 더 추상적이다. 감정도 있는 것 같고 시간의 잔상이면서 정확하지 않게 다가온다. 어쩌면 모습은 타인이 보는 나에 가깝고, 모양은 내가 느끼는 나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논산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보통은 훈련소나 평범한 도시의 이미지가 먼저 스치게 된다다. 그런데 어느 날, 탑정호를 따라 이어진 길 끝에서 전혀 다른 결의 공간을 만났다. 물빛이 닿는 자리,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시간의 흔적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곳. 논산의 물빛 복합문화센터는 그렇게 예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정적’이다. 사람들의 소음이 아니라, 시간을 머금은 공간 특유의 고요함이다. 창밖으로는 강과 다리가 이어지고, 실내에는 빛이 부드럽게 퍼진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곳이 더 좋았던 이유는, 전시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가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순간, 작품에서 느꼈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바깥의 풍경과 내부의 전시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완성된다. 단순히 ‘보고 나오는 전시’가 아니라, ‘머물게 되는 장소’에 적합한 곳이다.
3월 말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철이라는 재료를 통해 ‘기억과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단하고 차가운 물성이지만, 그 안에 담긴 형상은 오히려 매우 유연하다. 선 하나로 이어진 얼굴, 손짓, 동물의 형상들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채 윤곽만을 남긴다. 그래서 더 많은 상상을 남긴다. 마치 우리가 지나온 기억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정확한 형태로 붙잡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이름들도 인상적이다. ‘도로시’, ‘수화’, ‘이름 없는 것들’, ‘지나간 것들’. 각각의 제목은 하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관람자의 경험을 끌어들이는 장치가 된다. 특히 ‘지나간 것들’이라는 말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멈추게 된다. 지나간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철로 만들어진 선들은 벽에 그림자를 만든다. 그 그림자는 또 다른 작품이 된다. 실제 형상과 그림자가 겹쳐지면서 하나의 얼굴이 두 개의 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혹은 기억 속의 누군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전시는 그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전시장 한편에 적혀 있는 문장은 이 공간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모든 시간에는 저마다의 모양이 있고, 그것은 한 번에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드러난다는 말. 어쩌면 우리는 늘 어떤 형태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은 아주 뒤늦게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은 주말에 가볍게 다녀오기에도 좋다. 복잡한 관광지가 아니라, 천천히 걷고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전시를 보고, 창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밖으로 나와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하루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빠르게 소비되는 여행이 아니라, 감정이 남는 여행이 되는 것이다.
논산의 물빛 복합문화센터는 특별히 화려하지 않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남는다. 철로 만든 선들이 만들어낸 형태처럼, 이곳에서의 시간도 또 하나의 윤곽으로 마음속에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던 선이 어느 순간 또렷해지듯이 말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질지를 고민한다. 사회 속에서 요구되는 표정이나 역할이 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정리된 이미지들이 있다. 철사는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비어 있음과 연결을 동시에 드러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남을지 자신만의 기억으로 모양을 그릴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에 좋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