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멍, 물멍, 사람멍

공주시 충남역사박물관 야외에서 펼쳐진 꽃멍 + 물멍 책자리

지난 4월 12일에 방문한 충남역사박물관 일원에서는 ‘꽃멍+물멍, 책자리’라는 이름의 야외도서관 행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자연과 독서가 함께 놓인 공간으로 조성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꽃멍’이라는 주제였다. 벚꽃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펼쳐 들고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0R5A7858_новый размер.JPG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늘 움직인다. 사람은 그 속도를 따라가고,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진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사용한다. 걷는 것도, 만나는 것도, 심지어 쉬는 것조차 목적을 갖는다. 그런데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그 모든 방향이 잠시 끊어진다.

0R5A7859_новый размер.JPG
0R5A7862_новый размер.JPG

공주 충남역사박물관의 봄이 그랬다. 벚꽃은 이미 충분히 만개했고 사람들은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서두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하고 있었다.

0R5A7863_новый размер.JPG

이곳은 ‘꽃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멍을 때리는 공간이라기보다 시간을 늦추는 구조에 가까웠다. 도시는 시간을 앞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반대로 시간을 붙잡아 두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0R5A7865_новый размер.JPG
0R5A786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벚꽃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이미 이 공간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머무르는 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항상 다음 장소를 향해 이동하고 다음 일을 위해 시간을 쓴다. 그래서 멈춰 있는 시간은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멈춤이 자연스럽다.

0R5A7868_новый размер.JPG

벚꽃은 급하게 피지 않고 사람도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책장은 바람에 조금씩 넘어가고 말소리는 낮게 흐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시간이 천천히 쌓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이 ‘책’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원래 빠르게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을 읽고 멈추고 생각하는 사이에 시간이 흐른다.

0R5A7871_новый размер.JPG

그 구조 자체가 이미 느림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야외도서관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도시가 만들어낸 빠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느림 사이에서 사람이 잠시 균형을 되찾는 공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은 특별한 것을 하지 않을 때 가장 완전해진다.

0R5A7872_новый размер.JPG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해야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남긴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떠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겹쳐지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0R5A7880_новый размер.JPG

5월에는 ‘물멍’이라는 또 다른 주제로 제민천 일원에서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물길을 따라 책을 읽는 공간이 어떻게 구성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0R5A7884_новый размер.JPG

바람에 벚꽃이 떨어지고 사람이 앉아 있고 책장이 넘어가는 그 순간들이 하나의 층처럼 쌓인다. 그래서 이 공간을 떠난 뒤에도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다른 속도로 계속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 아마 답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는 곳.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곳. 꽃멍, 물멍이 열린 공주의 이 봄은 그 질문에 대해 조용히 답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칠갑타워에서 시작되는 미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