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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2. 2018

열쇠

사천 남일대 해수욕장

사천시 끝자락에 자리한 남일대 해수욕장은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모래찜질로 유명할 뿐만이 아니라 코끼리바위를 비롯하여 조그마한 해수욕장의 풍광이 좋은 곳이다. 보통 서해의 자그마한 해수욕장은 그냥 크기만 작을 뿐이라면 이곳은 남해의 비경을 놓치지 않아서 좋다.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필자가 발견한 것은 조형물로 만들어진 하나의 자물쇠와 열쇠다. 사람의 심장을 담은 하트 모양은 흔히 사랑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이다. 보통 연인들은 열쇠가 맞아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자물쇠를 잠근 사람이 대충 맞았다고 하면서 스스로 열어 버린다. 그리고 아쉬워한다. 나에게 맞는 열쇠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한탄하면서 말이다. 


한겨울이지만 중부지방과 온도차가 크다. 거의 10도 가까이 차이 나는 듯하다. 체감을 따지면 더 온도 차이가 크게 느껴질 것이다. 사천 남일대 해수욕장은 경주 최씨의 시조 최치원이 이름을 붙여준 곳이기에 필자에게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곳까지 와서 시조의 흔적을 보게 될지는 몰랐다. 맑고 푸른 바다와 해안의 백사장 및 주변 절경을 보고 남녘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이라는 한자 남일대가 붙여졌다. 

최치원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와서 시조가 이야기해주는 조언을 듣는 느낌이다. 북쪽으로 와룡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코끼리 바위가 우뚝 서 있으며 서쪽으로는 삼천포항이 펼쳐지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천재 문장가였던 최치원의 글은 곳곳에서 보았지만 역시 그중에 으뜸은 토황소격문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서 적의 마음까지 동요하게 만들었던 그 글에는 그의 힘이 실려 있다. 

사천의 유명한 시인인 박재삼 씨가 그랬듯이 창작의 비법은 없고 사람의 마음의 열쇠를 만드는 것 역시 비법은 없다. 그냥 온전히 그 사람을 바라보고 조금씩 가까이 가는 방법이 유일하다. 그럼 멀리서 관망하는 것은 어떨까. 멀리서 관망하는 것으로는 그 사람을 절대 알 수가 없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재산 혹은 외모만 알 수 있지 그 이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해도 알기가 힘든데 그걸 나누기까지 하니 쉽겠는가. 사람을 안다는 것은 좋은 것을 같이 보기도 하고 나쁜 것을 같이 나누기도 하고 밥도 많이 먹어 보고, 때론 의견 다툼도 해보고 웃어도 보아야 한다. 

자 사람의 가슴속에는 이렇게 큰 열쇠가 있다. 이렇게 큰 열쇠는 맞지 않은 작은 열쇠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작은 열쇠로 이 자물쇠를 열려고 하는 순간 열쇠가 부러지고 가슴에는 스크래치가 남게 될 것이다. 한두 번이면 심각하지 않겠지만 수십 번이라면 아무리 큰 가슴이라도 열쇠 구멍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멀리서 보면 좋은 것도 있다.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의 온기나 향기 또한 맡지 못한다. 가까이서 보고 겪어보고 해도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같은 것이 흐르고 있다. 풍랑이 인다고 해서 멀리까지 가는 것이 고단하다고 해서 가지 않으면 조용하게 잘 살 수는 있다. 그럼 섬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영원히 알 수는 없다. 

코끼리 바위가 있다고 해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저 끝에 돌출된 것이 코끼리 바위라고 하는데 마치 어린 왕자에서 뱀이 코끼리를 삼킨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코끼리가 마치 바닷물을 마시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을 보려면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 모습을 관찰할 수는 없다. 

해가 저물어 간다. 삼천포에 사는 사람들은 이 온도가 춥다고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중부권에서 내려온 필자에게는 따뜻하기만 하다. 물론 이 따뜻함의 온도 차이로 인해 지금 살짝 고생을 하고 있지만 온도가 이렇게 많은 차이를 만들게 될지 몰랐다. 남해는 서해와 전혀 다른 풍광을 연출해낸다. 남일대에 자리한 호텔과 해수온천에서 나오는 빛이 바다를 수놓고 있다. 

삼천포에 왔으니 삼천포 실비를 먹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무모하게 아무 집에나 들어갔다. 소주 세병에 기본 안주 세팅이 되면 보통 50,000 ~60,000의 비용이 든다. 혼자서는 무리였지만 현지인들로 보이는 아무 테이블에 가서 딜을 하고 나서 앉아서 먹어 본다. 하나씩 먹기에 힘든 해물들이 이렇게 나오고 여기에 술을 주문할 때마다 색다른 안주들이 나온다. 그리고 삼천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분들의 이해하기 힘든 엄청 사투리 공세를 듣고 나서 못 올 곳을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술을 더 마시면 술기운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술 마시고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느낌만 더 드는 것 같다. 


마음을 여는 열쇠는 자신이 만들지만 그 재료는 상대방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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