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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5. 2018

창작의 비법은 없다.

시인 박재삼

몇 년째 주변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 있다. 주제를 어떻게 끌어내느냐 글의 플롯은 어떻게 구성하느냐, 인권과 관련한 이야기는 어렵다 등 다양하고 수많은 질문들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최소 자격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글 쓰는데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자체가 이미 한 번 쓰인 성냥 같은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론하고 있는 방법들도 대동소이하고 다를 바 없다. 소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책을 충분히 읽고 생각의 다양성의 폭이 열린 상태라면 글을 배울 최소의 자세가 된다. 책의 권수는 딱히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추사 김정희의 말을 빌면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고 나서 비로소 붓을 들 수 있었다고 한다. 


삼천포에 가면 바다가 낳은 시인 박재삼문학관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삼천포로 자리를 잡고 히노데 국민학교에 입학한 박재삼은 이후 야간중학교를 다니며 시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던 박재삼은 스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사에 다니게 되면서 시를 쓰는 일에 더욱 열의를 쏟는다. 그의 시는 날로 기량과 빛을 더해 1955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섭리」 · 「정적」 등이 실린다. 이로써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 박재삼은 1956년 「춘향이 마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걷는다. 


박재삼은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가는데 집안이 가난했던 탓도 있긴 했지만 평소 소탈하고 소박했으며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대의 시인 박목월, 서정주, 김동리, 고은, 성찬경 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재삼의 시를 모두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문학관에서 그의 대표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의 시를 보면 '한'과 '슬픔'이 있고 이를 자연으로 풀어냈다. '한'과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랑의 힘을 빌었다. 시집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시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차 한잔의 팡세'

'사랑한다는 말을 나 그대에게 하지 못해도' 

'비 듣는 가을나무'

먼 나라로 갈까나 / 가서는 허기(虛飢) 져 / 콧노래나 부를까나. // 이왕 억울한 판에는 /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 더 서러운 일을 / 뼈에 차도록 / 당하고 살 까나. // 고향의 뒷골목 / 돌담 사이 풀잎 모양 / 할 수 없이 솟아서는 / 남의 손에 뽑힐 듯이 뽑힐 듯이 / 나는 살 까나.  「소곡(小曲)」


소곡이라는 작품의 서러움은 일제 강점기에 다른 민족에 의해 대물림하는 가난과 거듭된 피침으로 강요당한 수난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지금 한국사회에도 유효해 보이는 시다. 같은 민족에 의해 기득권에 의해 조직적으로 대물림하는 가난과 당하고 사는 억울함이 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정가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래.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 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해와 달, 별까지의 / 거리 말인가 /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 사랑하는 사람과 / 나의 거리도 / 자로 재지 못할 바엔 /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 이것들이 다시 / 냉수 사발 안에 떠서 / 어른어른 비쳐오는 /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 시방 갈증 때문에 /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 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의 인생을 보면 가난함으로 인해 굴곡도 많았지만 타고난 낙천성으로 많은 것을 품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지인들이 말하는 박재삼을 보면 욕심이 거의 없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1972년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글만 쓰고 살던 그는 1995년 백일장 심사 도중에 신부전증으로 쓰러진 후 1997년에 숨을 거둔다. 

시를 잘 쓰기 위한 비법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은 박재삼은 비법은 없다고 결론 지었다고 한다. 다만 많은 문학체험과 꾸준한 연습, 반복된 수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깊고 풍부한 사고능력과 사물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볼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 의견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가만히 앉아서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자연을 보고 새로운 것을 만져보고 느껴야 한다. 

박재삼 문학관 바로 옆에는 한옥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호연재라고 부르는 학당으로 조선 영조 46년 (1770년)에 건립되었다. 이 지역의 인재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지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문인들은 망국의 비분강개를 이곳에서 시문집으로 지어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호연재는 철거되지만 이후 고장의 원로들과 민초들이 뜻을 모아 2008년에 다시 복원하여 역사성과 넋을 정신을 기렸다. 


지역을 다니다 보면 시인이나 문학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대부분 고인이 된 그들의 인생은 기록으로만 만나지만 각자 주는 가르침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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