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까지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우다.
비운의 군주라는 광해군은 인조 반정에 의해 폐위되기는 했지만 균형적인 정치감각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군주라고 최근 평가받고 있다. 왕의 자리에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애했던 광해는 신하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조선의 변곡점에 있었던 군주다. 선조-광해-인조로 이어지는 역사는 왕권위주에서 신권으로 넘어가는 그 흐름을 상징한다. 이후 영정조 시대에 노련한 군주를 만나기 전까지 조선은 백성들의 삶을 외면했다.
광해가 선조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은 그가 백성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장을 뛰어다니며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던 것은 당시 군주였던 선조가 아니라 광해군이었다. 자식을 칭찬해도 되련만 권력은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인지 선조는 그를 시기했다. 시기함을 넘어 광해를 세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픽션이긴 하지만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은 바로 도승지 허균이다. 실제 허균이 역모죄로 1618년에 처형될 때 같이 역모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신분은 대부분 무사, 중인, 승려, 서자들이었다. 영화 광해가 허균을 중심인물로 그린 것은 허균이 꿈꾸었던 그런 세상을 허구로나마 보여준 것이었던 것 같다. 직접 대화는 해보지 않았지만 허균은 조선의 행정개혁을 비롯하여 신분제도 철폐라던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중국 국가 도서관에서 발견된 ‘조선시선’이라는 책에서 허균은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면서 임금과 정치세력은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허균이 실제 도승지는 아니었지만 광해군의 신임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 선조가 생전에 아끼던 인목대비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던 광해군에게 인목대비를 폐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광해군의 신임을 얻게 되지만 몇 년 후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다는 역모죄로 잡혀가서 1618년 8월 26일 능지 처참되고 이미 죽은 그의 아버지 허엽도 부관참시의 대상이 되었다.
광해군은 허균이 죽자마자 반교문을 내리는데 보통 반교문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내렸다. 반교문을 보면 “허균은 성품이 사납고 행실이 개, 돼지와 같았다. 윤리를 어지럽히고 음란을 자행하여 인간의 도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죄인을 잡아서 동쪽의 저잣거리에 베어 죽이고 다시 기쁨을 누리고자 대사령을 베푸노라." 과연 그는 허균의 처형을 기뻐했던 것인가?
영화 광해는 광해군이 정적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자 허균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던 중에 저잣거리에서 만담으로 인기를 끌던 하선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하선을 이용해 자신을 대신하고 전략적으로 자신의 운신 폭도 넓혀보려던 광해군은 의도치 않게 약에 중독되고 만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광해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하선은 국정을 다스리는 법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한고조 유방의 말처럼 점차적으로 왕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허균이 생각했던 임금의 모습과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그의 사상이 천민인 하선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는 것이 관객의 마음을 훔치면서 무려 1,23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왕의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해하려는 무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판단력을 잃고 폭군이 되어버렸던 광해군은 하선의 활약 덕분에 정적을 가려낼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역사 속에 허균은 역모로 죽었지만 영화 광해에서 허균은 비밀스러운 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하는 킹메이커이면서 나라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전략가로 등장한다.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박충서’의 무리를 일망타진할 기회를 잡기 위해 이들 일당을 궁으로 끌어들이면서 궁안에서의 반역자뿐만이 아니라 광해군에게 반역의 마음을 가졌던 외부세력들을 모두 일망타진한다.
"왕이 되고 싶소."
“그 꿈 내가 이루어 드리리다. “
“난 왕이 되고 싶소이다. 하지만 나 살자고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난 싫소”
허균과 하선의 대화에서 보듯이 광해군은 왕이 가진 힘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행동할 줄 아는 인물이었지만 왕의 대역을 하던 하선은 그냥 백성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인물에 멈추어 섰다. 허균이 못 이룬 꿈을‘홍길동 전’에서 펼치려고 했던 것처럼 하선의 꿈도 일장춘몽 15일의 짧은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비사(祕史)에 따르면 광해군이 왕으로 불렸던 15년 중,
어느 15일간 그는 전에 없던 성군이었다고 한다.
상옥추제의 계략은 젼락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는데 있다. 눈에 뻔히 보이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잘 살펴보니 분명히 약한 부분이 보이면 누구라도 그쪽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병참선이 길어지게 된다던가 주력부대가 후속부대와의 연결이 느슨해지면 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여세를 몰아 북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 이때 갑작스럽게 참전을 결전한 중군군에 의해 고립이 된다. 북한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이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적절한 시기에 중국군이 개입되었고 미군은 궁지에 몰렸다.
미국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은 여러 기록을 남겼다. 당시 남하하려는 중국군의 수는 120,000명으로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국 제10군단 장병 105,000명과 숫자상으로 비슷해 보이나 이미 예측하지 못한 중국군의 개입은 전세를 악화시켰다. 철수작전은 미 1 해병사단 1만여 명이 중국군을 지연시키고 군단병력과 피난민 약 200,000여 명을 우선 철수시켰다. 마지막으로 중국군의 포위망을 뚫은 미 해병사단이 철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 작전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초반부에 표현된 바 있다.
사실 남자들은 모두 이 전략을 잘 사용한다. 상옥추제라는 말은 지붕 위에 적을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운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우린 그런 적이 없었나?
있다. 바로 여자친구를 사귈 때다. 배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갈 수 있는 오지에 가서 배 시간이 끊길 때까지 정신없게 만들던가 버스가 끊겼다는 등의 얕은 수를 내서 어떻게든 간에 1 박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핵심은 퇴로가 없는 곳까지 유인하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상황을 아주 많이 고려하고 여행을 간다.
실제 삼국지에서 지붕 위에 올라간다음 사다리를 치워버린 사례가 등장한다. 촉서제갈량전을 보면 제갈량이 유비를 따라 유표에게 머문 적이 있었다. 유표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전처 소생인 유기와 후처 소생인 유종이었다. 대부분 내리사랑이 그렇듯이 유표는 두 번째 아들인 유종을 예뻐하였다. 후처는 자신의 아들의 지위를 위해 계속 유표에게 유기와의 관계를 이간질시켰다. 자신의 입지가 난처해진 유기는 궁지에 벗어나기 위해 제갈량에게 묘안을 부탁하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기는 뒤뜰에 있는 높은 누각 위에 술상을 차려놓고 제갈량을 초대했다. 술기운이 몸안을 돌기 시작할 때 유기는 하인들을 시켜 누각의 사다리를 치워버리게 했다. 제갈량은 유기가 부탁했던 그 묘안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유기에게 계책을 알려주었다.
"당신은 춘추시대 진나라 헌공의 장자인 신생이 후계자 계승 문제로 자결한 이유를 알고 있소? 그는 나라 안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결국 자결하였지만 그 동생인 중이는 적나라로 망명하여 안전을 도모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유기는 제갈량이 말하는 의미를 깨닫고 유표의 곁을 떠나 먼 곳으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계모의 손을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였다.
상옥추제를 잘못 이해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퇴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전 와이프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자식을 담보로 인질극을 한다던지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것 같은 행동은 실만 있고 득은 하나도 없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