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7 영화 범죄의 재구성

어리석은 척 하되 미친 척 하지 마라.

손자병법 27번째 계책인 가치부전은 어리석고 바보인척하면서 적을 속인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다. 보통 약자가 강한 사람을 상대하거나 적의 수가 많을 때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적이 강하던가 수가 많으면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을 유혹할 때도 잘 사용하는데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진한척하던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잘 이용해 남심을 자극한다. 보통 강자를 경계하고 약자에게 경계를 허무는 법이다.


2004년에 개봉된 영화 범죄의 재구성뿐만이 아니라 2013년에 개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의 주인공은 평소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보로 위장한다. 아무도 그 사람이 위해를 가한다던가 나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 못하게끔 속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북한의 남파특수공작 5446 부대의 20000:1의 경쟁률을 뚫은 최고 엘리트 요원 원류환에게 내려진 지령은 '남한 최하계층 달동네 바보로 잠입하라!'이다. 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리석은 척 행동하는 가치부전을 스크린에서 보여준 셈이다.


당시 개봉했을 때 수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범죄의 재구성은 한국은행 사기극을 통해 돈을 벌겠다고 모여든 다섯 명이 한 탕을 했지만 누구나 그 과실을 가져가지 못했다. 범죄의 재구성은 완벽해 보이는 범죄를 재구성하면서 누가 그 과실을 먹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완벽한 시놉시스 개발자 최창혁은 한국 은행에서 50억을 인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사고로 죽는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최창혁의 형은 책을 좋아하면서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보이는 사람이다. 어눌해 보이는 그를 만만하게 보는 팜므파탈 사기꾼 서인경이 접근하고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과 사기꾼들의 대부 ‘김선생'까지 모두 촉각을 세우고 접근하지만 어리석은 척은 하되 미치지 않은 그의 모습에서 범죄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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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망이 좁혀지면서 부상당한 ‘얼매’가 체포되고, 도망을 다니던 ‘휘발유’는 도박장에서 잡힌다. ‘제비’ 또한 빈털터리인 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범죄인이라는 탈도 벗고 50억이라는 큰 돈까지 챙기기 위해 최창혁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전쟁에 있어서 군의 사기는 테크닉이라기보다 심리전이듯이 삶 속에서 사기 역시 테크닉이 교묘하게 결합된 심리전이다.


이 영화는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기반하고 있다. 1996년 1월 17일 대동은행 직원으로 가장하여 한국은행 구미사무소에서 발생했던 범죄인데 실제로 9억 원을 인출하여 잠적해버렸는데 지금까지 범인들을 잡지 못하고 미제로 남아 있다.


영화의 엔딩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이 의미 있다.


"걸려들었다. 지금 이 사람은 상식보다 탐욕이 더 크다.

탐욕스러운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 모두 다 우릴 만날 수 있다."


인생 한 방이라는 생각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은 특히 가치부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척 하지 말라는 것은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되 그것에 함몰되어 자신을 잃지 말라는 조언도 포함하고 있다. 웃는 얼굴로 다가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은 그 사람의 경계가 풀어지고 마음속의 거짓 신뢰를 쌓는 순간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빼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돌아갈 길이 없거나 후진하기 힘들 때 더 쉽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그래서 먼저 상대방의 주변을 정리하고 고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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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개봉했던 유주얼 서스펙트 역시 가치부전 계략을 이용해 노련하다는 형사를 속이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과도하게 믿어주는 경향이 있다. 영화 속에서 노련한 선임 형사 데이브 쿠얀은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 보이면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버벌을 보자마자 주동자가 아니라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버벌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 된다. 결국 자신이 얻을 것을 모두 얻은 버벌이 나가면서 불편해 보이던 다리와 손이 정상인으로 돌아오면서 걸어가는 모습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다. 관객들은 그 형사와 같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황당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치부전은 어리석은 척하고 바보인 척 하면서 적을 속이는 전략으로 철저하게 속여서 적이 방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정타를 날리는 계략이다. 위나라 명제가 죽자 조상과 사마의는 공동으로 권력을 잡고 나라를 다스렸으나 조상의 계략으로 사마의는 병권을 빼앗긴다.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이에 조상은 사람을 보내 사마의를 염탐하였다. 그러나 사마의는 염탐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들의 염탐을 역으로 이용하여 약을 토해내고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병이 심해졌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사마의는 조상의 경계심을 누그러지고 이를 이용해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차라리 모른 척하여 행동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거짓으로 아는 척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라.

조용히 현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구름 속에 천둥을 숨기는 것처럼 하라.


가치부전은 자신에게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는데 섣불리 움직여 일을 그르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지금 일이 잘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샛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일이 되게 하기 위해 뇌물을 쓰기도 한다. 그 당시에는 그 방법들이 통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탈이 난다. 사람의 인생은 계속해서 누적되기 때문이다. 춘추시대에 초나라 패왕이었던 장왕은 이런 말을 한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 번 날면 하늘을 뚫을 것처럼 날고,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나는 책 읽기를 게을리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세상을 알기에 내가 아직도 부족하고 부족한 나는 언제쯤이나 채워지게 될지는 모른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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