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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0. 2018

법이란

솔로몬로파크

법에 온도가 있다면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법이라는 것이 원래 온도가 없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느껴져야 하지만 실상 보면 그렇지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서운 강추위가 후려치는 겨울에도 따뜻한 온기를 선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뜨겨운 여름날에도 살이 에일 것 같은 낮은 온도를 느낄 수도 있다. 법무부가 운영하고 있는 대전의 솔로몬로파크는 아이들이 법에 대해서 배워보고 접해보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법무부가 공원이면서 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솔로몬로파크의 이름은 바로 솔로몬이 주인공이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3장에는 솔로몬의 판결이 나온다.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 명확하게 판결하는 것이 법의 몫이다. 사회정서상 과하다고 판단하여 혹은 법리적인 해석 결과를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주는 것이 법이 아니다. 

솔로몬로파크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원이 참 잘 조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시설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곳에 와서 쉴만한 그런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법을 행하는 행정기관은 사법부이며 이들을 길러내는 곳은 사법연수원이며 지역마다 대법원, 가정법원, 검찰청등이 국민들의 민사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형사법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 법연수관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교육이나 세미나 등의 장소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무려 영국은 1689년에 제1조 국왕은 왕권에 의해 의회의 승인 없이 법률의 효력과 집행을 정지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위법이라는 권리장전을 마련했고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는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원 신앙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 출판의 자유와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사항을 구제하기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없다고 명문화하였다. 

최근 모  TV프로에서 특정 사건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법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는 인간 세상에서 재판관 노릇을 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선과 악을 가리는 '정의의 저울'을, 왼손에는 칼이나 법전을 들고 눈가리개를 한 채, 싸움이 붙은 두 사람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었는데 죄를 지은 사람이 탄 접시는 아래로 내려가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탄 접시는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서 역시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신문고가 있었지만 사실 신문고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하다. 우선 신문고가 궁궐 안쪽에 있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지기에게는 무어라고 하고 들어갈 것인가. 만약 임금이 자유로운 출입을 허하였다고 하더라도 담당자가 그것을 제한하였다면 거의 유명무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상징적인 의미로는 남아 있다. 

법체험관은 주로 초등학생 정도까지의 눈높이에 맞춘 체험시설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체험하고 직접 볼 수는 있지만 우선 알리기에 초점을 맞춘 곳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와서 둘러보면 체험이나 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접해볼 수 있어서 좋다. 사실 법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만약 모호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을 더 명확하게 하고 세분화할수록 생각보다 빠져나갈 구멍이 많이 생긴다. 그렇다면 형량을 조금 더 광범위하게 확대해서 판사의 재량을 더 주면 어떻게 될까. 그것 또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니 돈에 의해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 누구나 신뢰하는 법치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일반 민주시민의 자질과 소양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시설의 체험이 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 가족, 내 사람, 지연, 학연으로 공적인 것까지 공평하지 않게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고 나아가서는 여러 문제 점도 눈감아줄 수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회에서 올바른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배려란 配 (짝 배), 慮 (생각할 려)가 합쳐진 단어다. 필자가 생각했을 때는 짝처럼 이 마치 자신처럼 이라는 말로 해석이 된다. 배려는 내가 당연히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배려가 있는 사회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가치가 만들어지는 사회다. 

우리나라 법제도 전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입법 체험실, 과학수사실, 모의법정실, 교도소 체험이 마련되어 있는  솔로몬 로파크는 솔로몬 왕이 재판을 통해 지혜롭게 정의를 실현했듯이 솔로몬 로파크는 법치사회의 자유, 지혜, 정의를 배워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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