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l 15. 2018

설탕이 녹는시간

2018 대전문학관 기획전시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솜사탕을 사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이가 실수로 물이 약간 있는 곳에 떨어트렸는데 마치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녹아버렸다. 설탕이라는 달콤함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설탕이 녹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대전의 구도심과 신도심에서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자리한 대전문학관은 대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원하는 곳이다. 


열기가 넘치다 못해 사람의 몸을 뜨겁게 데우기 시작한 7월 중순부터 가을이 끝나는 10월 31일까지 설탕이 녹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김채운, 박송이, 변선우, 한상철, 유하정 작가의 작품이 전시가 시작되었다. 작가 인터뷰 영상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시인의 작품과 유하정 아동문학가의 체험할 동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설탕물을 얻기 위해서는 설탕이 물에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 앙리 베르그송

설탕이 물과 만나서 하나로 합쳐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과거는 매 순간 현재와 뒤엉키며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변화는 새로워지는 것이고 창조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들에게는 독자가 필요하고 독자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조금씩 창조적으로 변하고 결핍을 승화시켜서 같이 성장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설탕처럼 생생하게 녹아 움직이는 달콤한 변화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결핍의 세계에 몰두하며 존재와 상징성을 통찰하는 시인 박송이를 비롯하여 재미있는 언어 속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적 사유를 담아내는 시인 변선우, 독특한 상상력으로 익숙한 것들이 낯선 이미지로 전복되는 순간을 그리는 시인 한상철, 작고 소외된 대상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인 김채운등을 만날 수 있다. 

설탕은 쉽게 만나볼 수 있듯이 시쓰기 역시 사소한 일상과 소소한 것들에서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보통은 이렇게 작품전에 와서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자신 안에 있는 것들 중에서 언어로 옮길 수 있는 것을 글 로쓰고 때론 말로 하게 된다. 

작가는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박송이 시인은 작가를 대상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대상을 허물어트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결핍은 모든 존재들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절실함과 외로움이 창작의 동력으로 결핍은 창작자에게 양분과 같은 영양분을 부여하기도 한다. 

복도_변선우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 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 내려가는 걸까....


...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을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저는 글을 쓸 때 같은 노래를 무한 반복해 놓는 스타일이에요. 대부분의 노래가 4분이 채 안 되잖아요. 그 노래가 마치 영원처럼 반복해내는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데요." 


오래 핀 것들_박송이


오랜 핀 것들은 축제가 없네

오늘은 쑥향이 맹맹하고 

오늘은 개나리를 노래해

봄길, 봄이래도 꽃 이래도 달갑지 않네

나는 차라리 벚꽃처럼 꽃살라 찍히고 싶네

오래 방랑해서

오래 상실해서

노란 목덜미가 꽃병에 꽂히고

베인 봄은 가고 또 오고 와도

나리나리 개나리

이것도 사랑 일랄까

하, 오늘은 쑥향이 맹맹하고

오래 핀 것들

오래 앓는 법에

골몰하네

다섯 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삶의 방식이 각각의 존재만큼이나 무궁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보면서 살아가지만 모든 것을 잡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작은 생명들의 몸짓을 잡아내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잡아낼 수 있다면 좋은 작가며 시인이 될 수 있다. 


모든 음식에 레시피가 있지만 손맛과 감각만큼이나 음식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많지가 않다. 말과 글의 맛깔스러운 맛은 사소한 것에 대한 것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올해 열리는 대전의 젊은 작가전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 만난 맛깔스러운 글의 맛을 맛볼 수 있다. 


대전문학관 기획전시실

2018 대전문학관 기획전시 젊은 작가전 2

7월 13일 (FRI) ~ 10월 31일 (WED)

매거진의 이전글 보령 매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