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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0. 2018

은석산

박문수 어사 묘

갑자기 시작된 산행이었다. 박문수 어사 묘로 가는 길은 차로 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와 북면 은지리·용암리의 경계에 있는 은석산에는 천적인 불개미가 집단으로 서식하기 때문에 송충이가 없다고 한다. 

은석산은 어사 박문수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곳이다. 박문수가 암행어사를 지낼 때 구해준 혼령이 불개미가 되어 박문수 묘소 주변의 소나무를 지키기 때문이라는 전설도 은석산에 스며들어 있다.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고 수석이 아름다워 시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라고 하는데 실제 이날 은석 산악회에 속해 있다는 여성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날이 시원해졌다고 하는데 역시 힘을 사용해서 올라가니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은석산 정상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박문수의 묘가 은석산 정상에서 불과 200여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 물론 박문수의 묘까지만 보고 여성 산악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았다. 

은석산에는  안정복이 목천 현감으로 재직 시 기우제문을 지어 작성산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고 하는 기우단이 남겨져 있다. 현재는 작성산이 은석산과 분리되어 불리고 있어, 작성산의 기우단이 은석산 정상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은석산에는 어사 박문수 이야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개목 고개에는 옛날 어느 촌부가 장에 다녀오다가 술에 취해 개목 고개에서 잠이 든 사이 불이 났지만, 기르던 개가 몸에 물을 묻혀와 뒹굴면서 주인을 살리고, 개는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 바로 은석산이다. 

어사 박문수가 이곳에 와서 시를 남겼다고 하는데 한번 읽어본다.

지는 해는 푸른 산에 걸려 붉은빛을 토하고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더라

나루터를 묻는 길손을 말채찍이 급하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도 지팡이가 바쁘구나

놓아 먹이는 풀밭에 소 그림자가 길고 

망부대 위엔 아내의 쪽 그림자가 나지막하더라

개울 남쪽 길 고목은 푸른 연기가 서려 있고

더벅버리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더라

-  낙조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길에 그래도 한 명 동행이 있어서 다행이다. 등산하시는 분들은 얼마 남았냐고 물으면 항상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얼마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이어진다. 

박문수 묘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이곳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거의 끝나는 것이라는 것만을 알면 된다. 

무수리 출신의 소생으로 평생을 자기 절제하면서 살았던 영조가 많이 아끼던 사람이 어사 박문수였다. 어려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박문수는 직설적이고 고집이 강한 성향이 영조와 닮았다고 한다. 영조는 "박문수의 고집은 큰 병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사로 알려져 있는 박문수는 어사이기도 했지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박문수를 영성군으로 봉하고 국가재정을 정립하는 절용 애민의 정신의 길을 함께 걸었다고 한다. 

영조를 왕위에 올리면서 조정을 장악했던 노론이 가득한 공간에서 소론 출신으로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정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박문수는 무한 신뢰가 가는 남자였다고 한다. 

푸르른 하늘과 그 비탈길에 자라나고 있는 한그루의 나무가 은석산과 어사 박문수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땀은 많이 흘렀지만 나름 의미는 있었던 시간이었다. 산 저쪽으로 넘어서 가면 더 볼 것이 많다는 산악인의 권유를 뒤로한 채 올라왔던 길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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