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지킬엔 하이드라는 소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니 간혹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중인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예측 불허한 그런 사람을 말하는 의미로 사용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무척이나 선하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런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통칭해서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자기보호본능이나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런 심리가 발현된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나르시시즘적인 성격장애나경계성 성격장애 같은 것도 이중인격의 한 형태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의사 헨리 지킬처럼 인간의 본성을 나누기 위한 시도는 가능할까? 명석한 지킬조차 그 실험에서 실패하고 내면의 악마인 하이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조차 지켜줄 수 없는 지킬의 고뇌는 자신 내면 속에 다른 악마인 하이드 때문이기도 한데 그걸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머리가 두개로 태어난 아이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쪽을 죽여야 하는 기형아처럼 인간의 손으로 다른 존재를 죽이는 것은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심리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이중인격이나 지킬 엔 하이드처럼 약물실험의 결과로 인해 또 하나의 자아를 탄생시킨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났다. 덕분에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다행인 것은 또 다른 나는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침팬지나 그런 동물로 변신하지 않는다. 그냥 24시간은 남자, 24시간은 여자로 살 뿐이다. 왜 그렇게 된 건지 물어본다면 그건 조물주에게 물어봐야 할 듯하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난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고 이런 나를 낳다가 엄마는 돌아가셨다.
대학교수이신 아빠는 이런 나를 이해해주고 잘 키워주었다. 학교를 가지는 못했지만 나름 정규과정은 모두 배우고 많지는 않지만 친구도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남자 사람 친구와 여자 사람 친구가 따로 있고 이들은 이런 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내키는 174cm이고 남자일 때의 몸무게는 70kg, 여자일 때의 몸무게는 51kg이다. 24시간이 지나면 손발의 크기가 조금 달라지고 머리카락의 길이도 확연하게 달라진다. 남자와 여자는 0.1%의 유전자 차이가 있어서 갈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매일 0.1%의 DNA 변화를 겪고 있는 셈이다.
지금 시간은 저녁 11시 30분.. 좀 있으면 또 다른 나인 여자가 나올 것이다. 활달하고 성격 좋고 노래 잘한다는 그 여자 말이다. 나는 그녀의 노랫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녀를 사모하는 누군가가 녹음해서 선물로 준 것을 들어보기만 했을 뿐이다. 노래를 잘하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사람과 제대로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아직까지 모쏠이다. 33살의 나이에 아직도 여자를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다. 24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혹시 그녀.. 아니 현지가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던가 머 그런 것이 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여자랑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모른다. 현지가 겪은 경험이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마치 다 쓰고 버린 재같은 기억이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현지는 그 한정된 시간에 남자와 많이 데이트를 하는 것 같다. 절대 1박 2일 여행 같은 것이나 모텔 등에서 보내지는 않지만 나름 요령껏 아주 잘 사귄다. 그래서 그녀에게 붙은 별명이 하나 있다. 광진구의 신데렐라라고 말이다. 신데렐라는 무슨... 23시만 되면 어떤 사람들하고도 만남을 하지 않고 헤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친척과의 공식적인 자리는 현지와 나 그리고 아빠와 대화를 통해 결정했다. 태어났던 그날의 성별을 따라 현지가 공식적인 아빠의 자식이다. 그럼 나는 어둠 속의 자식인가? 나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파트타임잡으로 일하고 있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반면 현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나름 돈을 잘 벌고 있다. 덕분에 내 생활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돈을 쓸 때마다 현지가 죽이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자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자신이고 자신이 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