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빌어 멀을 개새끼. 조금 심했다. 그냥 내 기분을 조금 더 격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새끼는... 아니 준구는 어디를 갔다 왔는지 내 폰에 창노래방 150,000원이라는 SMS 메시지가 와있다. 일을 해도 하루에 100,000원을 벌지 못하는 놈이 씀씀이도 크다. 누구에게도 이 고충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서 삭이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아빠에게 이야기해도 별 다른 해결책도 없다. 오히려 우월한 유전자를 모두 받은 네가 이해하라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사실 준구는 존재하지 않은 사람인 것은 맞다. 주민등록번호부터 검정고시 그리고 대학... 내 특별한 상황을 이해해서 교수님이 그렇게 해준 것은 아니지만 석사까지 무사히 마쳤다. 여자는 역시 예쁘고 봐야 한다. 그런데 준구 이 새끼는.. 아니 준구는 그냥 지질한 캐릭터다. 생긴 것도 평범한데 말도 잘못하고 무언가 이루고 싶다는 목표도 없다. 여자들은 미래가 없는 남자, 재미없는 남자, 생각 없는 남자를 싫어하는데 그걸 다가지고 있는 별... 그지 같은 놈이다.
24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몸이 바뀌긴 하지만 몸에 남긴 상처나 전날의 피곤함 이런 건 모두 가지고 간다. 준구가 노래방에서 실컷 놀고 난 다음날 나는 초주검상태에 이른다. 의욕적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해도 에너지가 부족해서 몸이 버티질 못한다. 오늘을 살고 내일 죽을 것처럼 노는 놈에게는 대책이 없다. 생각해봐라 내가 마시지도 않은 술 때문에 해장국을 먹어야 되는 게 말이 되는가. 난 술을 싫어한다. 술이 취해서 그 몽롱한 기분에 의도하지 않게 내 속에 있던 말을 하는 것도 싫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도 마음데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다음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그런 느낌과 속이 더부룩하고 때론 먹은 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게워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다.
내 몸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지만 여전히 낯설다. 준구에게 조금... 아니 아주....... 조금 미안하지만 그놈을 없앨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걸 사서 먹을 의도도 있다. 어릴 때 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한 번 자면 최소한 24시간 이상을 자니 난 동화 속에 그런 공주님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아빠가 설명해준 것을 듣고 현실을 깨달았다. 정상적으로 학교생활도 할 수 없고 24시간이 지나면 남자로 내 몸을 가지고 누군가가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너무 평범해 보이는 그 애 모습에 실망도 많이 했다. 그애가 자란 만큼 나도 자랐고 그애가 나이 먹은 만큼 나도 같이 나이를 먹어갔다. 준구는 머리가 평범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 노력도 많이 했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머리가 비상했던 것 같다. 1년에 홀수만 내 모습으로 살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한 달 15일이면 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았다. 처음에 이일을 할 때 준구에게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덜떨어진 그놈은 단순 작업 만 가능했지 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은 따라가지 못했다.
남자는 많이 만났지만 1년 이상을 간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남자들은 어느 정도 관계가 진전되면 하나같이 결혼을 운운하는데 그 생활을 감당할 자신도 없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내가 관계를 청산하는 관계로 갔던 것 같다. 중간에 계속 매달리는 남자도 있었지만 그런 남자 정리하는 거는 내가 지금 삶을 사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돈 좀 그만 쓰라고 동영상도 남겼는데 반응은 시큰둥하다. 내가 왜 이런 놈의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빠 말대로 유전자의 우월성을 내가 다 가져갔기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편할 듯하다. 아니다. 다시 한번 남겨야겠다.
"준구아. 나현지야. 반갑지는 않아도 반갑게 이 영상을 봤으면 해. 너도 나도 그렇지만 33살이잖아. 그 정도 나이면 서로 앞가림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중장비 같은 거 교육 좀 받으면 어떻겠어. 그거 나름 돈 좀 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내 카드는 그만 긁었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내 카드를 모두 정지시켰을 때 네가 몸에 멍을 만드는 바람에 나 치마도 못 입었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지만 머 같은 몸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이해해볼게. 그러니 제발.. 노래방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깨서 내가 도우미 아가씨처럼 보이게 안 만들었으면 좋겠어. 이해하지?...... 너 다시 내 카드 쓰면 죽일 수도 없고... 아 이 새끼 어떻게 하지. 아! 미안해 잠시 격해졌어. 하루 50,000원까지는 내가 인정해볼게. 괜찮지? 친구한테 생색 좀 내지 말고. 무언가를 사주고 만나는 친구 중에 제대로 된 친구는 없어. 그리고 내가 여자를 10명쯤은 소개해준 것 같은데... 너 제발 대화법 좀 배워. 다들 너 싫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