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무슨 일 하세요?" 1주일에 2번 정도 가서 도시락을 사 먹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뜬금없이 물어본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잠시 동안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과 함께 잠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뭐... 그냥. 여러 가지 아니... 지금 쉬고 아니... 공무원 준비하고 있어요." 얼버부리며 말을 제대로 못하는 나를 보며 잠깐 쳐다보더니 그냥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니 갑자기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여기요. 3,500원입니다."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3장과 100원짜리 5개를 건네주었다. "또 오세요." 나도 모르게 손이 뒤통수로 올라갔다. 긁적긁적이며 아무 말하지 못하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날이 추웠다.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면서 바람까지 불어서 그런지 온몸이 더욱더 얼어붙는 느낌이다. 오늘은 어느 PC방을 가서 시간을 보낼까. 현실은 그렇지만 게임상에서 나는 인정받는 캐릭터다. 내가 로그인하는 순간 나를 따라다니는 일행이 적지 않다.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남자.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곳에서는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게다가 현지는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이라 어설프지만 적당하게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사람들은 감탄을 하곤 한다. 현지가 사놓은 책이 수백 권이 넘지만 나는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걸 가지고 글 같은 것은 못쓰지만 그래도 무엇이 담겨 있는지 현지를 통해서 알 수 있으니까 그런 노력 같은 것이 필요 있을까.
혼자 가서 혼밥 먹는 것도 그랬는데 요즘에 편의점에서 나오는 도시락이 꽤나 잘 나오는 편이라서 편리해졌다. 지난번에 이 도시락을 통째로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바람에 플라스틱 포장이 녹아서 고생 좀 했다. 현지가 카드를 숨겨두긴 했지만 잘 찾아냈다. 오늘은 점이나 보러 가볼까. 재미있겠다. 현금서비스 좀 받아야 될 듯하다. 그런 곳에서 카드를 받지는 않겠지?
10만 원 정도를 찾고 나서 인터넷에서 괜찮다는 점집을 찾아봤다. 도지숙 철학원? 인터넷 평이 나쁘지 않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가서 물어봐야겠다. 도심 한가운데 2층에 있는 도지숙 철학원의 겉은 평범해 보였다. 2층까지 올라가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취업문제를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잘 살 수 있는지 그냥 내 처지를 알 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내주는 따뜻한 유자차를 한잔 마시고 한 시간쯤 기다리고 있었을까. 내 차례가 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50쯤 돼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나를 뚫어지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내 이름과 손금, 사주를 묻더니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고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이 세상에 없는 그런 사주인데." 이 사람이 무얼 아는 건가? 그냥 멀뚱멀뚱 여자를 쳐다보았다. 중년의 여성은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나를 떠보는 듯한 눈빛이다. "지금까지 일을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네. 그리고 왜 여자가 있을까. 결혼할 사주는 잘 안 보이는데 말야." 분명히 대충 찍는 말일 것이다. 내가 입은 행색만 봐도 대부분 그 정도는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여성스럽게 보이는 듯한 나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여자를 언급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살고 싶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냥 잘살고 싶어요." 여자가 나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말한다. "그렇게 살면 잘 살긴 힘들 텐데."
"왜요?" 여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되면 찾아와. 오늘은 여기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