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어떻게 알았는지 한수희의 집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장이라도 건져보려는 카메라맨들과 한수희의 목소리를 담아 추측성 기사 써서 물어뜯을 자세가 되어 있는 기자들도 앞에 무리를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이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 줄은 몰랐다. 일간지와 인터넷 신문들의 연예부 기자뿐만이 아니라 사회부 기자까지 모두 쏟아져 나온 느낌이었다. 한수희가 기자회견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한수희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신의 차를 타려고 집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기자들이 앞으로 쏟아지듯이 몰려들었다.
"한수희 씨 한마디 해주시죠."
"최현 씨랑은 언제부터 알았나요."
"한수희 씨 비자금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최현 씨를 만나러 경찰서에 가실 생각은 있나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드라마 촬영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올 때 갑자기 누군가의 폰에서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문세가 아닌 오혁이 부르는 '소녀'가 사람들이 이목을 끌며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한수희는 그 틈을 이용해 사람들을 헤치고 자신의 벤에 탔다. 기자들이 벤의 앞을 막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결국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벤의 뒤를 기자들의 차들이 쫓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네가 흘린 거 맞아? 대체 최현이랑은 왜 이렇게 엮이는 거야."
매니저는 차를 운전하며 룸미러로 뒤를 보며 한수희에게 말을 걸었다.
"물어보지 마 그리고 내가 흘린 것도 아니고 기자들이 어떻게 알아냈나 보지."
옆에 있던 메이크업 해주던 여자도 궁금한 듯이 참견했다.
"언니 정말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 드라마 PD가 전화하고 난리야. 거기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무기명 채권에 전 잡지사 에디터와 묘한 관계 그리고 지금은 살인 피의자가 된 남자.. 이거 소설 쓰기 딱 좋잖아. 지금 네이버에 검색 1순위야. 좋겠어.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페이스북 페이지가 터지려고 한다."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에요?"
"기자들만으로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당신들까지 그럴 거야?"
"그러니까 우리만이라도 사실은 알자고. 수희가 그렇게 되면 우린 뭐가 돼?"
"기다려봐. 좀 지나면 묻히겠지."
"이게 묻힐일이냐고 그 최현이라는 친구가 재판받는 내내 연결시킬 텐데. CF 계약 이야기 나오던 것도 지금 쏙 들어갔어."
"우선 모르쇠로 일관하자고. 우리까지 흔들리면 안 되잖아."
"대표님한테 전화 왔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
"근데 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거야."
적막한 공간에 혼자 놓여 있었다. 쇠창살이 있는 나만을 위한 공간에 세상 어떠한 정보도 접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끊긴 채 온전히 홀로 되었다. 난 확실하게 믿는 쪽으로 결정했지만 주변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누가 나에게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내 본질이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내 본질을 변하게 만드는 결정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 선택헤 후회하지 않는 기술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 100% 정답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최현이 있는 구치소는 교도소와 같이 운영되는 곳이 아닌 독립된 구치소로 아무나 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최현은 구속영장의 집행을 받은 형사피의자이기 때문에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나 들어올 수 없지만 깔끔한 슈트를 입은 수상한 남자는 예외인 모양인지 조용히 최현이 있는 방으로 다가왔다.
"어이구 최현 씨. 이게 무슨 고생이야."
최현은 누워 있다가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조명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누구시죠?"
"아! 최현 씨는 나를 잘 모를 거야. 난 최현 씨를 아주 잘았는데 말야."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닌데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여기요?"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할 근무자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최현 씨 지금 이 공간에는 당신과 나뿐이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최현 씨까지 사형 언도를 받으면 안 되잖아. 그거도 해결하고 겸사겸사 주변 사람들도 해피해지는 게 어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알잖아. 최현 씨 지금까지 그 난리를 쳐놓고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무기명 채권 말하는 거예요?"
"그래 그거. 윗선에서 그걸 많이 찾고 있거든. 혹시 먼저 찾은 것은 아니지. 아니지... 혹시 찾았기 때문에 경찰서로 온건 아니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그걸 찾고 제발로 경찰서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나요?"
"그래서 재미있어. 당신이 하는 짓거리가 예측이 잘 안돼. 그리고 조금 더 재미있게 해주려고 하는 말인데. 우리 당신 동생 경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
최현은 일어나 달려가 쇠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남자를 잡으려고 했지만 남자는 가볍게 피하며 오히려 최현이 멱살을 거머쥐었다.
"흥분하지 말고. 어디 있는지 안다고 했지 어떻게 했다고는 안 했어. 우리 좋게 가자는 거지."
숨을 쉬기 힘든 최현은 손으로 남자를 떼내려고 했으나 생각만큼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남자는 그때 최현을 풀어주었다. 최현은 체념한 듯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 쪽지는 가지고 있겠죠?"
"그럼 가지고 있는데 어디 섬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자세한 건 모르겠더라고."
"제 누명도 벗겨주고 주변 사람들도 아무 일 없게 해줄게. 참 그거 아나? 지금 한수희라는 친구 입장이 참 난처해졌어."
"그건..."
"우리도 알만큼 이제 다 알아. 괜히 서로 힘든 것보다 좋은 게 좋잖아."
"밤섬이라고 아시죠?"
"밤섬이야? 참 서울 한복판에 두고도 몰랐네. 그리고 거기 어디?"
"아버지와 어렸을 때 거기서 낚시를 여러 번 한적이 있는데 그곳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찾다가 아직 못 찾았어요."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야?"
"진짜예요. 거기가 상 밤섬과 하밤섬으로 나뉘어 있는데 상 밤섬에서 지대가 높은 곳에 나무랑 직경이 50cm 정도 되는 돌 하고 같이 놓여 있는 곳에 있을 거예요. 여기 들어와서 생각해보니까 거기 같은데 제가 못 가니까요."
"뭐 밤섬이 큰 것도 아니고 사람 좀 풀면 되겠지만 만약 거짓말한 거면... 상상에 맡기지."
남자는 쇠창살을 손바닥으로 세게 치고 뒤돌아 조용히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