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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5. 2020

혈연

사천 대산의 부자 상봉길

추석과 같은 명절이 지나면 항상 언론에서 등장하는 뉴스들이 있었다. 혈연 간의 다툼이라던가 고부갈등 혹은 돈과 얽힌 사건 등이 꼭 등장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그런 사건사고가 적어서 그런지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빠지지는 않았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보통 혈연이라고 한다.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결혼의 비율이 점차로 낮아지고 있지만 혈연의 끈끈함은 남보다는 돈독한 것도 사실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권력과 재력이 있을 때다. 재벌 간에서 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보듯이 과거 왕실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효종과 소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고려에는 다른 케이스도 있었다. 개경에서 사천까지는 머나먼 길이었는데 이곳까지 왕족이 유배가 되었던 적이 있다. 황금색의 벼가 지는 해에 더욱더 진해지는 사천으로 향해보았다. 

태조 왕건의 아들 중 대종이 있는데 그의 딸 두 명 헌정왕후와  언니 헌애왕후와 함께 경종의 비가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근친이 익숙한 왕실혼인풍습이 있었다. 경종이 죽은 뒤 왕륜사 남쪽의 사제에서 살던 중 안종욱과 가까이하다가 아이를 가졌는데 이 때문에 안종욱은 바로 이곳 사천으로 유배를 오게 된다. 대량원군인 왕순은 외삼촌인 성종의 손에 자라다가 목종 6년(1003)에 12세의 나이로 대량원군에 책봉되었다가 천추태후에 의해 한때 강제로 중이 되어 출가 생활을 하게 된다. 

확실히 해가 빨리 저물기 시작한다. 중이 되어 출가하기 전에 외삼촌의 배려로 아버지인 왕욱과 함께 살 수 있었다. 왕순은 왕욱이 사망하게 된 해인 996년까지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 그래서 사천의 곳곳마다부자상봉길이 조성되어 있다. 아버지가 정을 통했던 선왕의 계비로 헌정왕후와 왕순은 모두 태조의 손녀, 손자이니, 그들은 모자지간이면서 사촌 남매간이 되는 셈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면 혈육의 정으로 살았던 그 시기를 벽화로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야망이 컸던 천추태후는 왕순을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내는 속에 아슬아슬한 삶을 살게 된다.  1009년 2월 목종이 강조에 의해 폐립 되자 대신들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며 이때 그의 나이 18세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역사 속에서 길이남을 귀주대첩이 일어난다.  1012년에 거란이 현종의 입조(入朝)를 요구하며 다시 쳐들어왔으나 강감찬(姜邯贊)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함으로써 길이길이 남을 귀주대첩을 역사 속에 그려놓는다. 

성종 15년에 왕욱이 귀양지에 죽자 현종은 당시 6살이었는데 유언대로 장사를 지내고 개성으로 돌아가는데  왕욱은 자신이 죽거든 이 금을 술사에게 주고 사수현 서낭당의 남쪽 구룡동에 장사 지내게 하되 반드시 엎어서 묻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현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 목종 대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쇄신하였으며 매년 억울한 누명을 쓴 백성들을 풀어주는 일을 실시했고 일부 특권층의 사치와 낭비를 억제하였다. 현종이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비록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부자 상봉길이라고 붙여졌을 만큼 애틋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고려 광종이 기세 등등한 호족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확립했다면 안정기반을 마련한 것은 현종이었다. 현종은 호불의 군주였지만 최치원을 비롯한 선유들의 배향 의례를 제정하는 숭유 정책도 잊지 않았던 사람이다. 또다시 최치원이 반갑게 등장한다. 

왕궁이 아니었기에 일반 백성들처럼 부자간의 사랑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지 않았던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고려 제8대 임금인 현종의 유년시절 수학(修學) 장소인 배방사지를 바탕으로 부자(父子)간 비운의 상봉 고갯길인 고자봉과 안종능지, 배방사지를 잇는 총 10km 구간의 역사적 발자취를 스토리텔링 하여 관광 자원화된 것은 20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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