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의미

예산 김정희의 추사고택에서...

추사 김정희와 같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도전자는 바로 어제의 자신이다.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대신에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압박도 동시에 받게 되다. 글을 읽는 것은 작가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아슬아슬한 삶의 균형추를 매일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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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공간으로 추사 김정희 고택이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추사 김정희의 가문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생동감과 고박(古朴)한 맛을 풍기며 자형의 변화가 무쌍하고 난초 그림에도 뛰어났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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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소나무가 자연 속의 한 점처럼 보인다. 지금처럼 인문학적으로 혹은 작품으로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인생에 부침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으며 지금의 제주도에서도 오랜 유배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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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시는 분들이 아침을 열고 있을 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인간의 삶과 행동을 지도할 합리적이지만 지나치게 제하적이지는 않은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밀이 주장하기도 했다. 비롯 사회가 못마땅하더라도 인기 없는 의견을 견지하지만 그런 집단에 속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과 사회에서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길을 걷는 것과 사이에서 오랜 시간 버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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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살던 집이 이렇게 잘 보존된 곳은 많지가 않다. 집을 관리하시는 분이 가끔 보일 때 멀리서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단순한 예술가·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전환기를 산 신지식의 기수였다고 한다. 수없이 유배생활을 하다가 결국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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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가가 되려면 인기를 얻기보다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 선호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시계에서 생각 없는 다른 톱니들과 맞물리기를 거부해야 한다. 추사 고택의 곳곳에는 그가 썼던 글이 적혀 있다. 그의 글씨체로 쓰인 밑에 한글로 해석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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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의 입장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냥 대충 살아가도 되는 사회에서 왜 그렇냐는 질문을 계속 던져본다. 김정희의 학문은 여러 방면에 걸쳐서 두루 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청나라의 이름난 유학자들이 그를 가리켜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라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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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에 대한 칭찬을 마음껏 받아들일 만큼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의 고택에서 잠시 앉아서 그와 어울리는 꽃은 매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사의 '매화시옥'은 봄이 찾아왔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를 마주하며 옛 선비들이 시회를 열었던 곳에 걸렸던 현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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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측문으로 들어와서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추사 김정희 고택은 초기에는 53칸의 크기를 자랑했으나 1960년에 개축된 후 36칸 반으로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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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쓰는 법은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고 말했던 추사 김정희의 글에서 글을 쓰는 것 역시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닮아 있다. 초록빛 물결이 일렁이는 추사 김정희 고택에는 초여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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