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Road, 道

서산 옛길 독고개에서 천장사까지

누구에게나 길은 있다. 길을 걷는다. 길을 뛰기도 하고 가끔 술에 취하면 길에서 자기도 한다. 길이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한 번 만들어진 길은 뒷사람이 따라간다. 인생에서 길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앞서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의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실패가 적기 때문에 갔던 길만 가는 것이다.

딱 보아도 자동차의 통행이 뜸하지만 이곳은 사통팔달의 옛길이었던 독고개라고 한다. 연암산과 삼준산, 가야산이 모이는 골이 이 부근이어서 덫을 놓으면 쉽게 산 짐승을 잡았다고 한다. 예산에 자리한 수덕사를 오가는 스님들도 대부분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내륙과 포구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천장사라는 사찰이 나온다. 백제 궁남지로 유명한 무왕대에 천장사는 633년 백제의 담화선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된 사찰이라고 하나 담화선사는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며 시대가 올라가는 유물이나 유적도 현존하지 않기에 전설처럼 내려져만 오고 있다.

근현대 경허(鏡虛)[1849~1912]와 그의 제자 만공(滿空)[1871~1946]이 머물렀다는 천장사로 걸어가 본다. 만공은 이곳에서 도를 깨쳤다 한다. 이곳은 최인호(崔仁浩)의 소설 『길 없는 길』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구한말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와 만공 선사를 축으로 1천6백 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오는 한국 불교의 장명 등을 담았다.

길 없는 길이란 길이 있지만 없어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 같은 길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곳에 천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사찰로 아는 사람은 많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있다고 한다.

가을의 신록이 좋다. 봄에 피어나는 밝은 초록과는 다르지만 가을은 가을대로의 쓸쓸함과 고독함 속에 다시 봄을 기다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법당 앞에 고려 시대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2호로 지정된 천장사 칠층 석탑이 있다.

작은 암자 같은 사찰이지만 설명으로는 무왕대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부여에서 이곳은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백제의 경계선상에 있었을 것이다.

가을 단풍이 서산의 첫 번째 볼거리고, 먼저 깨달았다는 스님이 굽어보는 너른 마음의 바다, 길이 도로 이어가게 되는 길 풍경을 한 번에 보는 게 세 가지 볼거리다. 요즘의 단풍은 농염하다 못해 부풀어 터질 지경에 손에 자신도 모르게 붓을 들게 할지도 모른다.

오는 길에 입구가 막혀 있는 한옥 건물을 보았는데 그 건물은 천장사 지장암이라고 한다. 지장암은 천장사에서 조금 떨어진 산모퉁이에 위치한 도량으로, 경허 선사는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 지장암에 주석하면서 화두 참구와 참선 수행해 매진했다고 한다. 삶의 길은 없어도 가고 가면서 만드는 목적지는 있지만 경로는 모르는 재미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