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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흰 바위

아름다운 시가 연상되는 백석정

요즘에는 본관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심지어 자신의 본관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본관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본을 의미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결국 피도 물과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필자의 본관과 상관없는 다른 성씨의 본관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대가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고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도 많은데 고령 신 씨도 그중 하나다. 고령 신 씨(高靈 申氏)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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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청주에서 대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정자가 눈에 뜨였다. 하얀 바위 위에 걸터앉은듯한 작은 정자는 흰 눈과 잘 어울리는 배경 같은 건물이다. 고령 신 씨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신채호, 신숙주 등이 있는데 신숙주는 세조 때 영의정에 오르기도 했다. 이곳은 고령 신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대를 이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벼슬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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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고립되지 않고 외부세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이어가던 산동신씨들은 청주를 대표하는 세거문중이 된다. 소통과 사람들의 말을 이어주는 이 길목에는 청주시 낭성면 관정리 감천(甘川) 가에 북향 하여 위치하고 있는 백석정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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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정은 동부주부(東部主簿)를 지낸 백석정 신교(申?, 1641~1703)가 조선 숙종 3년(1677)에 세웠다고 한다. 백석정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뒤로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져 있고 앞은 흐르는 맑은 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27년에 후손들이 현 위치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구조는 1단의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모를 죽인 네모 기둥을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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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하게 데크길을 걸어서 백석정으로 다가가 본다. 호젓하게 내린 눈을 보니 자연스럽게 이백의 시가 연상된다. 이제 달이 뜰 시간이다. 이백은 달빛이 인간 세계를 누르는 풍경에 몸을 둔다고 생각하여 시를 쓰기도 했다.


지금 사람은 옛날의 달 보지 못하지만

지금의 달은 옛사람 비춰준 적 있지

옛사람도 지금 사람도 강물처럼 흘러 가버렸지만

함께 보았던 밝은 달은 모두 이와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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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의 아름다움이 흰 눈에 비칠 때 마음속에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움도 달빛 아래에서만 드러날 것만 같았다. 이런 때 듣기 좋은 음악은 어떤 것일까. 밝은 달 아래 정자에서 등을 비추면서 이따금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하나를 바라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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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부근에 자리한 머그미(墨井) 마을에서 생장(生長)해 파주목사를 지낸 신필청(申必淸, 1647~1710)은 백석정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팔경으로 설정하고, 계절 따라 달라지는 경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었다.


白石秋容瘦 (백암의 가을 모습 스산도 하건만)

淸霜粧晩楓 (서리 맞은 늦단풍 단장을 하네)

倚欄一樽酒 (난간에 기대 동이 술 마시니)

人在畵圖中 (사람이 그림 속에 있구나)


백암의 겨울 모습이 스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눈이 내린 이곳을 백색으로 채색을 하고 있었다. 술은 가져오지 않아서 마셔볼 수는 없지만 옛사람의 흔적이 어른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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