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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의 환경

권상을 모신 청주의 백록서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듯이 일정한 시공의 환경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나면 잊히게 되지만 정신은 길이 존재할 수 있다. 육신은 사라졌지만 현실의 시공할 능력을 영원히 지니고 있으며 언제 어느 곳이든 후세의 문화 참조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렇게 전해져 온 것이다. 전국에 자리한 서원은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적하고 사람들이 찾아가기에는 조금 떨어진 청주의 외곽에 백록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1710년(숙종 3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권상(權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던 백록서원은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고 복원되었다.

이정표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한 백록서원이 나온다. 경내의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된 사우(祠宇)와 정문, 중앙의 신문(神門)과 좌우 협문으로 된 삼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권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백록서원에서는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길재(吉哉). 호는 남강(南崗). 아버지는 전생서참봉(典牲署參奉) 권진(權振)인 권상을 제향하고 있다. 권상은 1528년(중종 23)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는데 문소전참봉(文昭殿參奉)에 제배되고, 1573년(선조 6)에 용강현령을 지냈다. 1583년(선조 16) 선공감정(繕工監正)에 이르렀다.

한 때는 중심이었던 곳에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대부분 외곽에 위치한 것이 서원과 향교다. 유학의 중심지였던 안동이나 전주, 광주 등은 다르긴 하겠지만 전답을 두고 운영해야 했던 서원이나 향교는 중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청주시의 옥산면이라는 지역은 병천천이 면 중앙을 곡류하며, 미호천이 동남면계를 흐르는 지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옥산(玉山)이라는 지명처럼 낙농이 일찍이 발달하여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풍요로운 농업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백록서원에 자리한 환희(歡喜)리는 본래 청주군 서강외이하구의 지역으로 하누재산 밑이 되므로 ‘하누재’ 또는 ‘환희’라고 불리던 곳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권상은 안동권씨인데 권씨들이 마을에 이주한 연유는 확실하게 모르나 약 400년 전쯤 안동권 씨 23세 도사공 어른이 피난을 와서 마을을 세웠다고 한다.


경효사(景孝祠)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으로 솟을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러둔 백록서원은 평소에는 개방되어 있지는 않으나 봄과 가을에 봉행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을 모르겠거든 그 벗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가까이 있는 벗의 행동까지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때론 옛사람을 벗처럼 생각하고 그 흔적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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