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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갈(解渴) 물길

청주의 천년 사찰 안심사를 찾아서.

사람이 살다 보면 갈증을 겪게 되는데 항상 필요한 것이 바로 앞에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갈증은 크게 정신적 갈증과 신체적 갈증이 있다. 갈증과 해소는 끊임없이 반복이 된다. 항상 차 있는 상태는 세상에 없다. 차면 바닥나고 바닥나면 채워진다. 한 편의 문장에서 정신적 갈증이 채워지고 한 바가지의 물에서 신체적 갈증이 해소가 된다. 돌아다니다 보면 목이 마를 때가 있는데 사찰에서 해갈할 때가 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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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춥고 맵다는 절기인 소한에 청주 천년사찰 안심사를 찾아가 보았다. 안심사는 말 그대로 마음이 안정되는 곳의 사찰이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줄 물이 담겨 있다. 물이 참 시원하다. 전날 무리를 한 덕분에 목마름이 적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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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고 있으면 리듬이 있다. 같은 소리는 서로 감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는다고 한다. 흘러내려오는 물이 연못에 담겨서 물고기들에게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돌로 잘 쌓인 기단 위에 안심사는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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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려오는 물을 바라보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안심사로 걸어서 올라가 본다. 안심사는 속리산 법주사에 소속된 작은 사찰로서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사찰로 기록에 따르면 775년(혜공왕 11)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하고, 1325년(충숙왕 12) 원명 국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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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내린 눈이 곳곳에 보인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계절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겨울이라서 좋은 것들도 있다. 안심사의 대웅전은 안쪽 깊숙한 곳에 남서향 하고 있으며 대웅전의 왼쪽에는 산신각과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및 탑비(塔碑)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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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는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닌데 아기자기하게 잘 모여 있어서 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안심사의 건물들은 조선 초기의 수법도 보이지만 대웅전과 같이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계 건축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포[多包]는 목조건축 양식인 공포(栱包)의 일종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고 그 위에 포작(包作)을 짜 올리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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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의 건물의 앞에는 역사와 의미를 알 수 있는 안내판이 있으니 읽어보면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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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의 옆으로 크기는 그보다 작은 형태로 만들어둔 연꽃 위의 스님이 보인다. 사리탑은 명망 있는 스님이 입적하고 난 후의 남아 있는 것을 모신 것이다. 예전에 사찰을 방문했다가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께 들은 말이 있었는데 우연하게 철학자 칸트가 한 말과 맥락이 같았다. "인성이라는 이 굽은 나무로는 어떤 반듯한 것도 만들 수 없다." 사람이 삶이 생각한 것처럼 단순하게 풀릴 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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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는 당간지주를 잘 활용하여 불화를 걸어두었다. 당간지주는 불화를 그린 旗)을 걸었던 장대, 즉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기둥을 의미하는데 보통은 돌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철제, 금동제, 목제인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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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 대웅전과 더불어 남아 있는 비로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1613년(광해군 5) 건립된 건물로 내외2출목(內外二出目) 5 포작(五包作)이며, 5량 가구(五樑架構)로 만들어져 있다. 원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존으로 모신 비로전이었으나, 후에 영산전(靈山殿)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뒤에 나한전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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