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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4. 2016

니체의 인간학

착한 사람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 

약함을 선량함으로 무장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아니 과반수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은 세상이 공평하고 악인도 없고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글쎄 그런 세상은 올까. 그런 세상은 인류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4부로 구성된 철학적 산문시로 19세기 후반에 간행이 된 니체의 대표적 작품이기도 하다. 철학 소설이기도 하면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속성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니체는 초인을 언급하면서 약함을 극도로 증오하기도 했다. 


니체의 인간학이라는 제목에서 무언가 확 끌리는 느낌이 담긴 이 책은 옛날에 재미있게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를 연상케 했다. 두 권의 책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매우 유사하다. 다수로 집단을 이룬 약한 자들은 도덕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라고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있어도 고개를 숙이라고 압박한다. 법이 정한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가지고 와서 능력 있는 자(책에서는 강자)를 억누르는 데 사용한다. 


"약자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자책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온몸으로 정당화하는 사람이다." 


주변에서 수많은 약자들을 보아왔다. 한국에서 이슈화된 흙수저의 대부분도 약자에 속한다. 시간이 있을 때는 TV를 보면서 웃고 즐기고 신데렐라 스토리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신을 항상 벼랑길에 몰아가면서 강하게 거듭나려는 강자의 각박함에 대해 혀를 차면서도 나태함, 서 투룸, 어설픔, 무지 등은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로또 혹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강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격받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도전을 즐긴다. 글쓰기를 할 때도 비슷하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글이라고 할지라도 쓰는 사람이 있고 욕(혹은 비난)을 들을 글은 아예 시도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강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순응한다. 학벌을 이야기하고 아주 조그마한 것에도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포탈에서 노출시켜주는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해하며 매번 인증까지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면 살수록 별별 일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약한 사람들의 특징은 보통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는 그런 나쁜 일들을 눈을 감는다는데 있다. 약해서 옳기 때문에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부조리하게 괴로움을 짊어졌다면 사회가 책임져줘야 된다는 이상한 논리도 펼친다. 그리고 그런 것은 국가가 책임져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주 조그마한 이득을 바랐을 뿐인데 그 사람(혹은 집단이)이 나를 속였다. 글세 그런 감각을 아예 죽여 놓고 다른 것을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닐까. 


"착한 사람들은 모두 약하다.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착한 사람인 것이다." 

- 권력에의 의지 


일부 강한 사람들은 약자에게 과도한 이득을 취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약자들(혹은 착한 사람들)은 스스로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강자 때문에 피해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강자가 너무 비열하기에 불쌍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리고 바꾸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가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열한다. 남성과 여성 약자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한남충과 메갈리아가 있다. 서로 상대방에게서 이유를 찾는다. 글쎄 그런 의미 없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하고 있기보다는 스스로를 낭떠러지 끝에 서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노인들에게 무언가 공짜로 쥐어주는 것은 합당한 것일까. 사회에 그만큼 공헌했으니 그 나이 정도 되면 대접받을 만 한가. 저자는 노인들을 후기 고령자라고 부르고 있다. 


일명 매스컴이라고 부르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슈가 생길수록 사람들 사이에 틈이 생길수록 좋아한다. 그런 사회가 되면 편 가르기가 더 쉬워지고 편 가르기 된 사람들(주로 약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관철이 되었나 궁금해서 계속 확인한다. 그 속에서 트래픽이 일어나고 트래픽은 돈을 만든다. 질투와 증오를 잘 퍼트리는 것이 저널리즘이고 대형 미디어다. 

착한 사람이 좋을까?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최악에 가깝다. 착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잘 속아 넘어가는 특징이 있는데 조금의 이자를 더 받기 위해 불안전한 저축은행에 돈을 넣은 주부나 한탕은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다단계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퇴직자.. 이들은 경계심은 많지만 사회에 대한 경계 근육은 발달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뿐만 아니라 1년을 가도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니까 혹은 약한 사람이니까 그런 일이 닥치면 안 되는 건가? 대체 그런 기준은 누가 만든 거고 누가 생각해낸 건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그런 돼먹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을 칭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자신의 무지와 무교양을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식 있는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이 자신을 배려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들은 언제까지나 무지하고 교양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p 98


한국사회도 일본처럼 일도 하지 않고 따로 준비하는 것도 없이 그냥 나이 먹어가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그룹을 지지 않는 약자에 속한다. 시간이 가는 대로 나이를 먹고 사회 적합성은 갈수록 떨어지면서 사회에 데뷔할 기회는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리고 사회를 비난한다.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라고...


최저임금이 매년 이슈처럼 거론되지만 그 그룹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약자다. 그것도 매우 선량하다.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을 뿐인데 1시간당 급여가 한 끼 식사도 못한다고 말한다. 한국사회도 자본주의 사회이다. 필자가 93년에 풀무원 물류 알바를 할 때 받았던 시급이 5,000원이었다. 당시 커피숍(지금의 형태는 아니었음)에서의 알바가 시급 800~1,000원을 받았을 때다. 가치를 올리고 약자에서 벗어나 약자를 선량함이나 착함으로 포장하지 않는 길은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가 너무나 약했기에 짜라투스라같은 사람까지 끌어들인 것일지 모른다. 이 책은 재미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생각보다 껄끄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읽어볼 가치가 분명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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