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존재와 미래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
이번에 언급하는 물의 밀도는 물질의 무거운 정도나 일정한 면적에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물이라고 하면 액체 상태만을 생각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기체 상태인 수증기와 고체 상태인 얼음을 포함한다. 물질의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을 밀도라고 하는데 물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안정감 혹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빈도로 밀도를 설명하고자 한다. 예로부터 물은 삶과 죽음의 매개체이며 탄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기반에는 양수라는 물이 있다. 기본적으로 양수의 성분은 모체의 혈장과 비슷하며 태아가 성장할수록 인지질, 태아세포성분, 솜털, 소변 등이 양수 성분에 포함된다. 양수의 성분이 일반적인 물과는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물의 일종이다.
도시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하수도계획이기도 하다. 하수도 계획은 상하수도공학을 기반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설계할 수 있지만 상수도 계획은 상하수도공학으로 잘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수원지가 그만큼의 인구를 먹여 살릴 정도의 수량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방의 거점도시가 자리한 곳에는 대형댐이 건설이 되어 있다. 결국에는 강의 물줄기가 얼마나 큰 도시와 경제권을 구성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이 100만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수로의 개발로 가능했었다. 그리스인들은 지상 수로를 이용해 고대 물관리 시스템인 카나트를 사용하였고 이탈리아는 물을 모으고 운반하기 위해 쿠니쿨리라고 불리는 지하 수로 시스템을 사용하였는데 로마의 엔지니어들은 이 두가지 기술을 접목하여 자신들의 환경과 도시계획을 고려한 정교한 수로 시스템(1)을 만들었기에 거대한 로마 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처럼 상수도가 잘 되어 있는 곳에서는 물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수를 정수기나 생수로 충당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물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TV에서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의 아이들에게는 물은 행복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먹는 물이 부족해 사회적 재난을 겪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해 큰 홍수가 나던가 일부 지방에서의 가뭄은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언젠가는 비가 내릴 테니 그때 해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좁은 나라여서 물이 부족하면 인근지역에서 끌어오는 것도 비용은 들겠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물을 바라보고나 물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물멍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수영을 잘하던 물이 무서워서 못하든 간에 들어가지만 않는다고 하더라도 물은 분명히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물은 살고 있는 곳에서 보이기만 해도 다른 만족감을 준다. 한강을 바라보는 곳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고 바다가 보이는 부산의 아파트 가격이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의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물이 가진 가치는 보통 수자원의 역할에 머물러 있게 된다. 도시가 발달을 할 때 도심의 규모는 작고 지가가 비싸지니까 작은 천은 복개를 하고 위에 건물을 짓는 과정을 거친다. 자연 하천이 가진 가치를 그때는 알지 못하고 중심지역 지대의 가치를 더 크게 본 것이다. 도시가 더 발달해서 부도심이 생겨나고 곳곳에 생활권이 생겨나면 복개했던 것을 들어내고 다시 천이 볼 수 있게 만든다. 한국의 대도시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왔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멈추지 않는다. 물의 흐름은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댐이나 보, 저수지같은 둑으로 가두어둘 수는 있지만 도시에서는 그렇게 가두어둘 수는 없다. 물은 잠시 고여서 정체될 수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 멈출 수 없는 물의 흐름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가장 걷기가 좋은 곳이다. 도시에서 우리가 걸을 때 끊기지 않는 여정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바로 천과 강이 흐르는 곳이다. 차량등으로 끊기지 않고 걸을 수가 있기에 도심에서 하천생태길은 모든 도시에서 만들어졌다. 도시에서는 아무리 교통공학적으로 잘 설계했다고 하더라도 한 두 번의 신호가 지나면 반드시 멈추게 된다. 도시는 자동차의 이동과 도시의 기능적 설계가 우선되지 인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간에게 벌을 주기 위한 목적이나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공간은 대부분 시야가 막혀 있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간 죄수들에게 물이 보이는 탁 트인 시야를 보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물론 악명 높은 죄수만 수감한다는 알카트라즈(2) 같은 곳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벽으로 모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거기서 행복함을 느꼈다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자주 접하는 물의 빈도는 물이 가진 밀도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물의 밀도도 적당해야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최근 들어 시간당 내리는 비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침수가 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물은 멀리서 볼 때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 가장 좋은 느낌이 든다.
우리의 리듬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연속성이 있게 걸어보려면 천변길만큼 좋은 곳은 없다. 모든 도시의 강과 천이 흐르는 곳이 끊긴 곳은 없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어야 삶에 만족도가 높다. 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곳에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물과 아주 가까운 곳도 아니고 경사가 높은 곳도 아니다. 적당한 경사에 흐르는 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강남과 같은 곳은 분지형의 대지로 개발이 되기 전에 수시로 침수가 되는 지역이었다. 실개천이 흘러가던 대부분의 땅을 덮어버렸다. 물이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강남은 한강으로 물이 유출되는 속도가 느리며 위의 땅은 모두 덮혀 있기에 폭우가 쏟아지면 아스팔트가 빠르게 저지대로 물을 실어 나르며 수해를 입게 하는 것이다.
물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불가근불가원이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지만 너무 멀어서도 안된다. 지구에 항상 비가 내리지만 그 비를 모두 활용하지도 못한다. 모든 종교의 신화에서 보면 물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물은 죽음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삶 속에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몸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물이 있기에 가능하다. 홍해의 물을 가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없어도 우리가 접하는 물의 밀도는 행복의 소소한 만족감을 주어 빈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미야자키 하야오(3) 는 자신의 세계관을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래소년 코난은 가공할 무기로 인한 전쟁으로 인해 모든 대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물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지는 몰라도 미래에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을 여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개개인이 삶의 반경, 도시, 국가의 물의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척도를 결정하면서도 신경쓰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 물의 밀도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1) 로마 최초의 수로인 아쿠아 아피아는 기원전 312년 로마 검열관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에쿠스가 건설했다. 기원전 144~140년에 건설된 아쿠아 마르시아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길고 중요한 수로중에 하나였으며 아나엔 강에서 나오는 깨끗한 물을 도시에 공급했다. 기원전 19년에는 아그리파가 건설한 아쿠아 비르고는 급격히 팽창하는 로마의 인구에 물을 공급하였고 유명한 트래비 분수를 비롯한 수많은 공중목욕탕과 분수에 물을 공급하였다.
(2) 지옥의 섬으로 유명한 알카트라즈는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약 2.4km 떨어진 작은 섬으로 흉악범들이 수감됐던 교도소로 유명한 곳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나 조지 켈리가 이곳에서 수감 생활을 하였다.
(3) 1941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군수공장 '미야자키 항공'을 운영하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전쟁으로 돈을 벌었던 아버지의 죄로 일본 제국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하면서 성장해간다. '황금의 손을 가진 군주'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화 하나하나를 직접 확인하는 완벽주의자이며 작업에 파묻혀 살기로 잘 알려져 있다. 모든 작품에 생태학적 관점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