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
은애
그냥 눈이 떠졌다. 보통은 3시가 넘어서야 눈이 떠지는데 이날 따라 몸이 가뿐하다고 느껴진 건 왜인지 모르겠다. 이 생활이 벌써 10년째이다. 지금은 그냥 타성에 의해 밀려가는 느낌이다. 이제는 한국에서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떤 조사에서 보니 한국 직장인의 평균소득이 아닌 중위소득으로 보면 월소득이 100만 원을 조금 넘는다고 한다. 그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막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 바닥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평균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과 실적 압박은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한국이 이상한 것이다. 대학까지 졸업해야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전화가 울린다. 스마트폰에 뜬 전화번호를 보니 손님이다. 거절한다는 것이 잘못 눌러졌다. 40대 중반쯤 되었을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은애야 일어났어?" 그냥 말없이 들었다. 왠지 대화하기 싫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화하기 싫어서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는데 끊겨 버렸다.
5일 전이었나? 요즘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제 먹은 저녁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있다. 수경이가 고민 있다고 해서 가게를 닫고 새벽 4시에 포장마차로 갔다. TV에서 많이 나오는 사람이 한다는 프랜차이즈 포장마차다. 조미료를 얼마나 넣는지 몰라도 느끼함의 극치를 달린다. 이곳은 수경이가 좋아하는 곳이라서 오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유를 당췌 알 수가 없다.
"수경아 왜 그래?"
"은애야 어떻게 해? 머리 아픈 일 생겼어"
"왜? 뭔데 그래?"
수경이 얼굴에서 잠시 멈칫하는 표정이 읽혔다. 뭣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십중팔구는 남자 이야기일 가능서이 높지만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마침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온다.
"뭘로 주문하시겠어요?"
"수경아 매운 닭발? 괜찮아?"
"응 아무거나" 수경이 답지 않다. 평소에 안주 결정권은 나에게 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매운 닭발 하나랑 요. 소주 하나 주세요"
"소주는 뭘로 드릴까요?"
"참이슬 주세요"
"매운 닭발 하나와 참이슬 맞으시죠?"
"예"
"은애야 나 소송당했어"
"진짜? 왜? 누가 그런 건데? 그때 그 남자? 이름이 뭐였지 아! 지훈 맞지?"
"응 맞아"
"혹시 돈문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안될 것 같기에 참았다.
"돈 달라는 민사 소송하고 갚을 의지가 없었다는 형사소송까지 같이 걸은 거야. 남자가 쩨쩨하게 그런 돈 가지고 말야"
"그러게 말했잖아. 아니다. 얼마를 달랐는데? "
"자그마치 3,000만 원이야. 지금 사는 집의 보증금 1,000만 원이 전부인데 그 돈을 어떻게 줘"
"그 돈은 받아다가 어디다가 썼는데?"
"머 애들하고 여행하고 가끔 안마받고 가방 좀 사고 그랬지"
수경이는 원래 남에게 의지하는 성향이 강했다. 나보다 Bar에서 일한 경력이 더 오래된 수경이는 자신이 돈 번다고 생각했지만 씀씀이가 커서 항상 마이너스가 났다. 부모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두 번 정도 메꾸어준 것으로 안다. 20대 중반이 되자 남자에게 의지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받아준 부모가 수경이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너 돈 좀 없어? 나 변호사 사야 할 것 같은데"
"변호사? 얼마나 필요한데"
"선임하려면 400은 있어야 하나 봐"
"사백? 그 정도는 없어. 100 정도는 어떻게 될 것 같긴 한데"
"너는 돈 좀 모았잖아. 아! 7년인가 넣었다는 연금 담보로 해주면 안돼?"
"네가 언제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도 그것까지는 무리야. 엄마한테 부탁해보면 안돼?"
"안돼 아빠 모르게 지난번에 한번 메꾸어준 적 있단 말야"
"꼭 변호사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냥 못값겠다고 하면 안되는 거야?" 솔직히 갚아야 될 돈 같았지만 지훈이라는 남자가 내 친구가 아니라 수경이가 내 친구다.
"나름 준비 좀 했나 봐. 나 그런 서류 같은 거 질색이잖아. 모르겠어 손님한테 물어봤는데 변호사 찾아가보라던데?"
내가 괜한걸 물어본 것 같다. 수경이는 그런 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수경이가 잘하는 것은 바로 술 마시는 일이었다. 게다가 남자가 좋아하는 말이라면 어찌나 잘하는지 내가 감탄할 정도였다. 먹고 살 재능은 하나 내려준다더니 아마 수경이에게는 남자를 홀리는 그런 재능을 준 모양이다. 그 운도 여기까지인가?
도준
도준은 유치장 문을 열면서 들어간다. 형사계에서 일한지 벌써 5년째이다. 수없이 별별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사건은 질색이다. 강력범죄도 아니고 원한에 따른 경범죄로 서로를 고소하고 상대방은 다른 걸로 걸고 넘어지는 이런 일 따위는 맡고 싶지 않다.
"김준기 씨 나오세요"
"죄 없다고 결정된 건가?"
"아니요. 집에 가계시면 아마 검사가 벌금형을 구형할 거예요.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판사가 그대로 결정할 거예요"
"아니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 거요. 난 이의제기도 못하나?"
"하실 수 있어요. 그건 법원에 가서 알아보시고 우선 가세요"
"이 나라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 그 새끼가 나한테 한 것은 그렇게 처리하고 말야"
"그러게 이제 좀 그만하세요.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들이 왜 그렇게 싸우세요. 적당히 화해하세요. 서로 기소해봤자 좋은 게 뭐가 있어요. 나라에 그렇게 벌금을 많이 내시고 싶으세요?"
입간판 하나 때문에 벌어진 감정싸움이 이렇게 까지 되었다. 경범죄뿐만이 아니라 사소한 다툼과 벌금형까지 치면 무척 피곤할 텐데 즐거운 모양이다. 피곤하다. 이런 걸 하려고 프로파일링 교육까지 받고 온 것이 아닌데 말인데... 지금까지 일하면서 관내에서 살인사건은 10여 건 정도 접해본 듯하다. 항상 그렇듯이 살인의 현장에는 피가 난무한다. 대부분 지인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셜록홈즈나 해외의 탐정소설에서 처럼 그런 추리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체가 발견된 현장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현장 주변은 우선적으로 봉쇄해야 되지만 생각만큼 잘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자리에 앉은 도준은 잠시 사건파일을 들여다보고 있다. 모두 자신이 억울하다는 내용뿐이다.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일도 경찰의 힘을 빌린다.
"박형사"
"예" 꼰대다. 계급이 경감이지만 동기들은 벌써 총경을 단 사람들도 적지 않다. 소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김 팀장을 보면 세상과 동떨어져서 사는 사람 같다.
"하계동에서 냉동된 시체가 발견되었다니까 지금 바로 가봐"
"예? 살인사건인가요?"
"그래 그런데 냉동이 되어 있어서 살해된 시간 추정이 모호한가 봐"
"아무것도 발견된 것이 없나요?"
"그러니까 가보라는 거지. 지구대에서 현장보존은 하긴 했는데 가봐야 알지"
"예 알겠습니다." 프랑스의 에드몽 로카로 가 그랬던가? '모든 범죄는 증거를 남긴다' 맞긴 하겠지만 이번에도 해당이 될까?
"인섭아 가자" 인섭이는 이제 형사계에 들어온지 1년 정도 된 신참이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풋내기다.
"예! 박형사님"
막히는 도로를 겨우 지나 노원구 상계동에 도착하자 폴리스 라인이 쳐진 곳이 보인다. 저런 곳이라면 한참 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 사건 해결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냉동이 얼마나 오랫동안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지문을 떠봐야 알겠지만 실종자로 등록이 안되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노원경찰서 형사계 박도준입니다"
"예 수고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누가 국민신문고에 올린 거예요. 노원구 상계동의 한 창고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데 조사도 안 한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와보니 시체가 있는 거 아니에요. 냉동이 돼서 냄새도 안 나는데 말이에요."
"당황하셨겠어요. 그런데 여기 주인은 찾아보셨어요?"
"예 찾아서 연락을 해둔 상태입니다."
"뭐래요?" 이 냉동창고 주인과 원한이 있는 사람 짓일까?
"여름에 판매할 아이스크림을 보관하고 있었답니다."
"4개월이나 남았는데요?"
"1년 이상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곳을 안 온지 보름이 넘었다고 하던데요?"
"보름이라..." 주변을 보니 변변한 CCTV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드디어 우리 팀이 미해결 사건을 맡아야 하는 때가 온건가?
"인섭아 우선 지문을 떠서 빨리 국과수하고 우리 DB에서 대조해봐. 난 여기 좀 더 살펴볼 테니까 너는 그거부터 해" 지문은 왜 안 지운 거지? 발견되길 원했던 것인가?
인섭이가 시체를 살피는 동안 도준은 조심히 주변을 살펴본다. 아이스크림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그리고 시신은 대체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사망하였을까? 이곳에 온 것을 보니 자연사는 아닐 테고 우발적? 계획적인 범행? 지문은 조금 훼손되기는 했지만 일부러 패턴의 일부는 남겨놓은 느낌이다. 시간을 벌려는 속셈인가?
은애
역시나 수경이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많이 취했다. 우선 100만 원을 해준다고 했지만 조금은 찝찝하다. 이전에 50만 원을 빌려주고 한참을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수경이 같은 스타일은 돈에 대해 상당히 너그러운 편이다. 문제는 자신에게는 너그럽지만 상대방의 돈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않다는 것이 맹점이다.
"수경아 괜찮아? 일어나 봐"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 새끼가 준거라고 나한테 쓰라고 준거라고 그래 놓고 지금 고소?"
사실 대가 없이 준 것은 아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나랑 같이 만나는 자리에서도 분명하게 말했지만 수경이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렀을 뿐이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자신이 갚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마음에는 없었을지 몰라도 말이다.
"알았어 수경아. 그 놈이 나쁜 놈이야. 사랑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달래"
"너도 그러는 거 아냐. 친구가 그 정도 못해주는 거야?"
"미안해 나도 지금 세금 정산하느라 머리가 아파"
"너는 나랑 다르잖아. 착실하고 미래도 준비했잖아"
친구만 아니면 그냥 팽개치고 가고 싶다. 살려고 준비한 것이 자신의 과소비 때문에 고소당한 변호사비를 대주려고 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내가 내일 백만 원은 입금시켜줄게 우선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봐"
"치사하게 백만 원 안받아!"
"취했으니까 내가 택시 잡아줄게 들어가~"
겨우 택시 잡아 태워 보내면서 택시기사에게 우선 택시비를 쥐어주었다. 주소와 함께... 그리고 수경이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지금 택시 잡아 보냈다고 전화를 해드렸다. 수경이를 만나면 진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이게 5일 전 기억이다. 바로 다음날 100만 원을 수경이 통장으로 입금시켜주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다. 술에도 칼로리가 있다고 하더니 술을 많이 마시다 보면 다음날 별로 배고픈 것을 못느낄때가 많다. 잘 안 먹어서 그런지 몸매는 잘 유지되는 듯하다. 오늘은 귀찮으니 그냥 머리나 묶고 나가야 되겠다. 멀지도 않은 나의 일자리 Star Bar로 말이다.
일찍 일어난 탓일까? 조금 잔다는 것이 벌써 9시가 넘었다. 동업하는 수희한테 한소리 듣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책임감이 없었던 적이 없는데 오늘따라 내 컨디션 같지가 않다. 그냥 대강 챙겨 입고 나갔다. 10년 만에 추위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생각만큼 춥지가 않았다. 많이 자서 그런지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집에서 걸어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Bar는 그냥 Morden Bar이다. 인테리어가 살짝 독특하기는 하지만 고급자재를 사용한 곳은 아니다.
"지희야?" 아직 손님이 없나? ㅁ자형 Bar라서 뒤편이나 위쪽에 손님이 앉아 있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안쪽에 손님 한 팀이 있었다. 알바로 일한지 2개월쯤 된 지희가 손님을 보고 있었다. 바쁜 모양이다. 수희는 어디 있는 거지? 주방으로 들어가자 수희가 담배를 피우다가 바로 끄고 나를 지나쳐갔다.
"수희야 늦어서 미안해" 수희는 대답이 없이 내 앞을 지나가 버렸다. 많이 화난 모양이다. 수희도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서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조금 냉정한 편이다. 돈을 벌어서 자신만의 샵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는 친구다. 갑자기 수경이가 생각나는 것을 왜일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수희가 손님에게 물어본다. 두 명이서 왔는데 30대 초반처럼 보인다. 매번 묻는 말이다. 위아래를 정하기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질문이다. 위아래가 정해지면 오빠, 누나가 정해지니 대화하기가 수월하다는 것인데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로 존중하면 좋겠지만 지금 Bar문화가 그렇지 않으니 나도 어쩔 수는 없다.
"서른한 살인데요? 그쪽은요?"
"저는 서른다섯인데요"
"그럼 누나네요. 누나라고 부를게요"
"그러셔도 되고요."
"말 놓으세요.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데요"
"한참 많아요? 한참 많다는 기준이 뭔데요?" 수희가 오늘 많이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저렇게 손님을 대하는 친구가 아닌데 말이다.
"아니요. 그냥 저보다 많다는 거죠"
"아 그래요? 예~~"
두 명이 온 팀에 나까지 앉아 있는 것은 좀 무리일 듯해서 그냥 주방에서 앉아 있었다. 일부 어린 친구들은 사람이 없을 때 손님이 들어오면 모두 모여 그 손님한테 몰려가기도 하는데 그건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한 사람의 이목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남자의 경우 특히나 여자와 달라한 사람 이상과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침 이때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세요" 수희와 지희가 누가 뭐라할 것이 없이 인사를 한다.
"들어가도 돼요?"
"예 그럼 당연하죠"
"편하신데 앉으세요"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자주 간 곳이 아니면 선택의 폭은 생각보다 좁다.
"여기 앉을게요" 이번에 들어온 손님도 두 명이다. 내가 가서 서브를 봐야 할 듯하다.
"메뉴판 보시고 주문해주세요"
지희는 기본 안주를 가지러 들어갔다. 수희와 내가 운영하는 Bar의 기본 안주는 다른 곳과 좀 다르다. 멸치가 죽방멸치로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 풍미가 참 좋은 안주다. 그것 때문에 오는 사람도 적지 않을 만큼 인기가 많다. 내가 가서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뭐지 이 사람들은? 도도 한척하는 걸까?
"저희 하이네켄으로 할게요"
"예 그럼 안주는?"
"그냥 맥주만 주세요"
"예 가져다 드릴게요"
분위기가 이상하다. 냉랭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손님들 오래간만에 본 것 같다. 바텐더와 할 말이 없는 듯 둘 사이의 대화만 오가고 있다. 지희가 하이네켄 세 병을 가지고 와서 옆자리에 앉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뭐지 이 손님은? 어린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가만히 있었다.
"저 23살이요"
"어리네. 나 군대 갈 때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네"
"나이 자랑하시는 거예요?"
"세월 빠르다. 생각해보면 애기잖아"
"성인이 되면 그런 구분이 의미가 있나요?"
" IMF 때 대학교 들어가고 그랬잖아. 이 친구들이 알려나 몰라"
"저 알거든요? IMF라는 거요."
"진짜? 그게 뭔데?"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자잖아요. 국제통화기금으로 1944년 브래턴 우즈 협정에 의거해서 발족이 된 거죠"
"헉 뭐야 얘"
"경제학 전공이에요"
사실 난 지희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좋았다. 요즘에는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나와서 쉽게 그만두고 심지어 하루일하고 아무 말없이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연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저한테는 물어볼 것이 없어요?"
"그럼 어디 대학 다니는데"
"알아맞혀보세요"
"제 말은 무시하는 거예요?"
"흠 서울시립대"'
"틀렸어요.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쳐요."
"진짜 너무 들 하네.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예요?"
"너무 베일에 쌓여 있네"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희도 그렇고 친구인 수희조차 나랑 대화를 한적이 없다. 손님들도 그렇다. 손을 내밀어 지희를 잡아봤지만 잡히지 않았다. 내가 죽은 건가? 아니 어떻게? 왜? 그럼 언제? 지난 3일 동안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나는 죽었다.
도준
냉동창고와 그 주변을 세세하게 살펴봤지만 이렇다 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목을 예리한 도구로 베거나 경동맥을 끊어 자살했지만 그러고서 냉동창고로 들어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장문, 발자국, 바퀴 자국, 혈액 등 어떤 것이 있을지 면밀히 살펴봤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다. 눈이 내렸다가 녹은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던 N제품사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우선 도준은 서로 복귀한다.
"김 팀장님 아직 증거로 할만한 것이 없는데요?"
"CCTV는?"
"요청했습니다"
"탐문은"
"나가아줘"
"피해자 지문은"
"인섭이 아니 진형사에게 맡겼습니다"
"창고 주인은 혐의점 없어?"
"아직은요"
"냉동고의 온도는?"
"예?"
"온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을 거니까"
"아 그건 체크 못했어요"
내가 김 팀장을 인정하는 것은 마치 내 주변에 CCTV를 설치해서 날 지켜볼 만큼 내 행적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설치해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때도 있다. 마침 다행히도 인섭이가 들어온다.
"박형사님 지문 결과 나왔습니다."
"그래 누구래"
"강남구 역삼동에 거주하는 김수아로 나왔습니다."
"뭐하는 사람인데?"
"그냥 케이블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던 여직원인 것 같은데요"
"마케팅이라..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잖아 골치 아픈데"
김수아는 대체 왜 죽은 거야?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보관하는 곳이라니 이건 달달함 속에 비극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의도된 행동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