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 V * M
지훈
"지훈 씨 왜 멍하게 있어?" 경리과 민주 씨다.
"아 아니에요"
"요즘 지훈 씨 답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멍이나 때리고"
"그냥 집안일이 있어서요."
심리학과를 나와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3~4년을 이력서만 내다가 하드웨어 유지 보수하는 곳으로 들어온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 때 심리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심리학이 실생활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학은 그냥 타이틀을 위한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읽어본 책이 문득 기억이 났다. 존 듀이였나? 그 사람이 한 말이 있다. '우리는 문제에 직면해야 비로소 생각한다' 동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회사 생활하고 밥 먹고 가끔 영화 보고 여행 가고 이게 전부다. 앞으로 다가올 문제는 외면한 채 살아가다가 문제가 닥치면 그걸 해결할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제기랄 왜 이렇게 된 거지? 한 달새 곰곰이 생각해본 게 있다. 그래도 해답은 안 나온다.
"지훈 씨 밥 먹으러 가요"
"예"
"요 앞에 해물칼국수 괜찮은 곳 생겼던데 거기 어때?"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요즘 보면 넋 나간 사람 같아"
"그냥 해결할 것이 있어서요"
"근데 민주 씨 물어볼 것이 있는데..."
"뭐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거든요.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라고요. 여자로서 어떻게 생각해요?"
"에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사랑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는 다 알 수 없지.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이타적 사랑만이 최고의 사랑인가 해서"
"그런 사람은 사기꾼들에게 딱 좋은 먹을거리야"
고민이 많아서 별 맛 없을 줄 알았더니 해물칼국수 의외로 맛이 있었다. 2인분에 전복과 오징어와 바지락이 실하게 들어 있어서 국물 맛이 확실했다. 내 몸이 아닌 모양이다.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니 말이다.
LE = V * M
이번 경험으로 확실한 공식 하나는 생각해냈다. 다른 사람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Love Energy (사랑에너지)는 Value (그 사람의 가치) * Money (투자된 돈)과 같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하는 사람들이 다시 원상복구 할 수 있다는 착각과 노름하는 사람들이 노름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돈과 마음을 모두 주었던 이성에게 집착하는 데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이다. 이미 반토막이 난 주식인 대부분의 투자자가 그런 방향으로 생각한 것이고 도박이라는 것은 할 때마다 그 확률이 줄어드는 게임이다. 더군다나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건데 물질로 시작한 마음 얻기는 돈이라는 중독성에 빠져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사랑을 돈의 무게로만 해오던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함정에 빠지면 사랑에너지를 키우기 위해 변할 것 없는 이성의 가치에다가 금전을 더 쏟아 붓는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파국이다. 끝이 보이는 이런 게임을 중간에는 포기하기 힘들다. 그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준
죽은 채 냉동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김수아의 검시결과과 나왔다. 직접적인 사인은 동물 도축에 사용되는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찔러 심장 파열로 인해 심정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검시 결과도 나왔다. 매우 천천히 심장에다가 칼을 찔러 넣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피해자는 고통 때문에 발버둥 쳤을 텐데 자상의 흔적은 매우 깨끗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감각은 살아있는 채로 마취를 했기 때문에 고통은 그대로 느껴지지만 몸은 움직일 수는 없었을 상태라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길어봐야 10초가 걸리지 않은 시간 동안 고통과 죽음 그리고 가해자의 공포스러운 눈을 바라보면서 최고의 지옥을 맞보았을 것이다.
"김 팀장님 이거 수상한데요. 연쇄살인 아닐까요?"
"그래? 최근에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해봐"
"예 20년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시도된 것을 찾아볼게요"
연쇄살인은 대량살인과 다르다. 굳이 FBI의 범죄 분류 매뉴얼을 따르자면 '사건 사이에 냉각기를 둔 채 세곡 이상에서 세 차례 이상 살인을 저지를 것' 냉각기는 몇 달이 될 수도 있고 수년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왜곡된 욕망과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참기 힘든 충동보다는 절제된 살인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진형사 김수아 주변 인물 리스트업 했어?"
"예 지금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돼?"
"대략 100여 명 정도 되는데요?"
"모두들 최근 한 달 사이에 이상동향이나 가족관계, 이동 그런 거 모두 조사해"
"예 알겠습니다."
현장에 다시 한번 나가 봐야 되겠다. 이 사건의 검시 결과로 인해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것의 직감이 온다.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린 IP를 분석했지만 어딘지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지역이라도 나오면 지리적 프로파일링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우선 필체 분석은 힘들고 올린 글을 가지고 문장 분석은 요청해놓은 상태다. 그 창고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은 30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그 건물에는 편의점이 입점해 있어서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봤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노원서의 박도준입니다."
"예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저기 보이는 창고에서 시체가 하나 발견되서요."
"예? 그래서 경찰들이 저렇게 와있는 거예요?"
"혹시 요 근래 이상한 일 없었어요? 갑자기 이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라던가.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그런 거 말이에요."
"글쎄요. 저 주변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은 아니라서요."
"여기 CCTV보관은 며칠 정도 하세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한 보름쯤 지나면 앞에 것이 지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CCTV 파일 좀 볼 수 있을까요."
"사장님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전 알바라서요."
"그럼 지금 전화 좀 해주세요."
목격자에 의해 전해 들은 인상착의는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각 외로 목격자들은 편견이 있어서 범인 식별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사장님이 바꾸어 달라는데요?"
"아 예. 노원서의 박도준인데요. 제가 필요한 정보가 있을지 몰라서 그러는데 협조 좀 해주시죠."
"극악범들을 사형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내 세금 꼬박 꼬박 받아서 교도소 범죄자들이나 먹여 살리고 말야" 이런 사람들은 꼭 있었다. 범죄자에 대한 무한 분노라던가 국가에 대한 불신도 포함된 느낌이다.
"아 예. 협조해주시면 제가 잘 찾아내겠습니다."
"잡으면 무조건 사형해야지. 이건 머.."
"예 예 감사합니다." 전화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돌려주었다.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다는 사장 밑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 외로 곤욕일 것이다. 프리터들이 넘쳐 난다는데..
"형사님 이쪽으로 오세요."
나도 범죄자들을 잡아서 교도소에 넣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감화되는 일은 드물었다. 간혹 있기도 했지만 오히려 공고한 범죄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교도소란 범인을 국가가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지켜주는 곳'
수경
은애를 제외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정상적인 직장을 가진 남자와 사귀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받는 월급으로 제대로 된 명품가방 하나 사주는 것은 고사하고 스테이크 하나 썰려고 해도 카드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능력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남자들의 직업이 포장마차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대부업체 등에서 영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이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벌면 장땡 아닌가? 돈은 움직이는 거다.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나의 호주머니로...
"미영야. 이번에 차 생겼다며?"
"그냥 작고 귀여운 차야. 생각보다 힘이 좋더라고"
"그래서 뭔데?"
"아우디 A1"
"A1? 그런 것도 나왔어?"
"응 이번에 나왔다는데 아우디는 아우딘 가봐 가격이 3천만 원 중반 이나 해"
"조그만 게 가격은 비싸네. 좋겠다."
"너는 그 회사원 아직도 만나?"
"아니 끝났어. 그런데 좀 귀찮은 게 있어서"
"뭔데? 뭔데?"
미영이에게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쟁하는 느낌이 있는 친구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알게 된다. 같이 놀기에는 참 좋은데 내걸 다 내보이기는 싫은 그런 친구가 여자에게는 꼭 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스파게티 어때"
"잘하는데 있어?"
"홍대 있는데에 괜찮은 집 하나 발견했거든 그거 먹고 더치커피 괜찮게 하는데 있는데 거기나 가자."
미영이는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맛집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저녁에는 Bar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알바라서 조금 자유롭기도 한 것 같다. 얼굴이 조막 만한데다가 눈도 예쁘고 가슴도 커서 그런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스파게티를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니 벌써 시간이 6시가 넘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미영이는 조금 더 놀자고 했지만 확실한 물주를 물은 미영이와 나와 같을 수는 없으니까.
"엄마 나왔어. 내 옷 드라이했어?"
"응 해놨어 방에다가 걸어놨어."
"엄마 밥은?"
"네가 내 걱정해주는 거야. 그건 그렇고 이번에 카드값 나온 거 니 아빠가 봤어."
"헉 어떻게 해. 몰래 받아서 주라니까."
"내가 집에만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 암튼 니가 알아서 해."
보증을 섰다가 사업이 망한 이후로 계속 노동일로 살아오신 아빠는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정말 싫어했다. 아직도 갚아야 할돈이 1억가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에게는 유독 약해서 자신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셨다. 머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된지도 모르지만.
"야. 넌 대체 언제까지 집에 있을래?"
전문대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집에 있는 남동생이다. 알바를 했다고 하지만 합쳐봐야 6개월이 채 안된다.
"내가 있고 싶어서 있나? 세상이 날 몰라주는 것을 어떻게 하라고."
"머 네가 머 할 줄 아는 게 있어? 공장이나 아빠따라 막일라도 해야지.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놈이"
"누난 일하는데 맨날 집에서 돈 가져가잖아. "
"내가 너랑 똑같어? 난 매일 열심히 일해"
"그것도 일이라고. 웃음 파는 거지."
난 남동생이 참 한심하다. 남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밥벌이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여자처럼 술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때 삐끼일도 소개해준 적이 있는데 일주일 만에 때려 쳤다. 비위 맞추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잡스러운 생각중에 손님에게 전화가 온다.
"조용이해. 예 오빠~"
"좀 있으면 가게 열겠네?"
"예 그래야죠. 식사하셨어요?"
"거래처 직원하고 했지. 수경이는?"
"전 바빠서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어요."
"그래? 그럼 있다가 초밥이라도 사다 줄까?"
"초밥은요. 오빠 바쁘실 텐데"
"괜찮아. 있다가 갈게"
"예 그럼 있다 뵐게요."
난 초밥이 싫다. 친구들은 좋아하는데 난 초밥에 올려진 생선 비린내의 비릿함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남자들은 초밥을 좋아한다고 하면 조금 다르게 본다. 털털하게 삼겹살이 좋다고 말하는 애들도 있는데 그건 저렴한 전략이다. 머 솔직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무튼 남자들은 초밥을 좋아하는 여자가 조금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 이 옷은 드라이 잘해야 해. 지난번처럼 잘 못하는 세탁소에 맡기지 말고."
"내가 니 비서냐. 나이는 30대 중반이나 돼서"
"내가 나 좋자고 그러는 거야? 내가 잘돼 봐 누가 좋겠어."
"알았어 이년아. 가기나 해."
"갔다 올게"
LE = V *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