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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4. 2017

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능성을 확신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작이라는 이 소설은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물리학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의 이름에서 따온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이름에도 호기심이 많이 간 것도 사실이다. 라플라스는 아래와 같은 가설을 세운 적이 있다. 


'만일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나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자 과학이론으로 제시한 라플라스의 가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연상되게끔 해주었다. 불확정성 원리는 난류의 유체역학, 소립자 이론, 강자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하이젠베르크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라플라스의 가설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공통점은 정확한 위치, 정확한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차량의 속도, 사람의 움직임, 비행기의 추락 등의 불확정도는 입자에 비해 너무나 작은 값이기에 측정이 가능하지만 입자 단위에서는 정확한 위치에서는 속도가 불명확한 값을 가지며 파장이 정의되어 있는 입자파는 존재가 가능하지 않다. 인간의 한계이며 현재 존재하는 기계로도 계산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그 수치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답게 여러 가지 복선을 깔면서 책을 끝까지 잡고 있게 만들었다. 일본에는 온천 명소로 유명한 곳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온천욕이 일반화된 나라이기도하다. 그 온천에서 의문사가 발생하는데 그 원인이 황화수소에 있었다. 온천에서는 미량이지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화산이 활성화되었을 때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황화수소가 나온다. 그렇지만 황화수소는 화학적인 조작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자살을 하는 재료로 악용되기도 한다. 


소설의 초중반까지는 베일에 싸여 가려진 존재처럼 그려지는 아마 카스 겐토와 무언가 신비해 보여서 소설의 제목처럼 라플라스의 마녀라고 부를만한 마도카는 쫓기고 쫓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40살 차이 나는 미즈키 요시로와 결혼한 매력적인 여인 치사토, 경찰 출신의 보디가드인 다케오, 평범하지만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아오에 교수, 마도카의 아버지인 천재 뇌신경의 우하라 박사, 식물인간인 아들을 어떻게든 회복시켜보려는 아마 카스 사이세이 등까지 미묘하게 얽혀있고 모두 관계되어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으며 콘셉트가 많이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 있던 다음 작품의 콘셉트가 머릿속에 정리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은 그냥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에 자주 해본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그 자체로도 존재 의미가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쳐갈 수 없는 것이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해부학적으로는 일반인의 뇌와 전혀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그들은 약간 복잡한 작업이라도 대뇌의 극히 일부밖에 쓰지 않았어요. 깎고 구부리고 조립하는 등의 작업을 할 때, 보통 사람들은 대뇌를 광범위하게 써야 합니다. 약간 복잡한 작업이라면 뇌의 거의 전역을 써야 해서 누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지요.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하면 듣기야 좋지만, 요컨대 정보처리 능력이 한계에 달한 상태인 거예요. 그런 점에서 명인이나 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정보처리 능력에 여유가 있어서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것을 관찰하고 생각해가면서 그것을 작업에 피드백하는 게 가능합니다. 게다가 좀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들 자신이 그걸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당신은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중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줄게. 대다수의 범용 한 인간들은 아무런 진실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고, 그런 인간들을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아까 당신이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아니야."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며 조금은 특이한 패턴의 삶을 선택한 필자의 내면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즐거운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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