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의 색채

연산문화창고에서 열린 20세기 최고의 색채 화가 앙리 마티스의 레플리카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어버린 분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면서 살아간다. 누구나 보지만 누구나 모든 것을 느낄 수 없고 느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에는 약간의 선천적인 능력과 대부분의 후천적인 노력에 기반한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발휘가 될 수가 있다. 그림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프랑스의 여러 화가들 중 20세기에 주목받은 화가로 앙리 마티스가 있다. 평생 동안 색채의 표현력을 추구했던 앙리 마티스의 소재는 실내풍경이나 구상적인 형태였다. 소매상을 하는 아버지와 아마추어 화가 오니 어머니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그는 성인 되고 나서 캉탱 라투르 학교에서 소묘 강습을 받기 시작하였다.

앙리 마티스는 10여 년 동안 프랑스 사실주의자들이 그렸던 네덜란드 양식을 따랐으며 상징파 화가인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 되어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모로가 세상을 떠난 후 마티스는 화실을 떠나게 된다.

부모의 유전자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앙리 마티스는 나름의 합리적인 숙련도를 달성하였으며 세잔풍을 도입하여 극도로 구성적인 포름과 어두운 색조로 전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05년 살롱 도톤느에서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와 거친 터치를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 미술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1906년 11월경 피카소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대의 두 화가는 평생 친구로 지내면서도 라이벌이 되었으며 서로가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앙리 마티스는 재현에 기반을 하였고 피카소는 상상력에서 작업하는 경향이 컸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세우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살펴본다.

그의 그림을 보면 디테일하기보다는 굵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면을 처리함에 있어서 단순하게 처리를 하였다. 색채는 넓은 영역에 걸쳐서 얇고 평면적이지만 밝게 칠해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그림자는 사실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작품을 활동을 한 앙리 마티스가 경제적인 자유를 얻게 된 것은 50대 중반부터라고 보인다. 그전까지는 걸작이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이라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50대 후반에 상당한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부지런했다고 한다.

"한 화가의 초기 작품 속에는 이미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색채로 그림이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 점차로 좋아지기도 하고 때론 그 삶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출발한 시점에서 는 상당히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앙리 마티스의 말년은 지병 등으로 인해 고생을 받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들에서 창조력이 약해진 조짐이나 슬픔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앙리 마티스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 입체감이라던가 원근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림 전체의 효과를 보면 극단적으로 평면화되어 원근법의 규칙이나 입체감을 내기 위한 관습적 생략기법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양탄자나 직물의 무늬를 연상시키게 한다.

그의 말년에는 가위를 이용하여 작품활동을 했다. 예술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 〈재즈 Jazz〉(1947)를 출판하면서 화려한 색채 삽화를 곁들였는데, 여기서 이용한 기법을 그는 '가위로 그린 소묘'라고 불렀다. 결국 소묘에서 시작해서 다른 형태의 소묘로 끝이 난 것이다. 모든 것에 기본은 하나의 도구로 그리는 소묘 즉 데생에서 시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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