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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바위 (羅州文巖)

계절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공간에 자리한 남평문 씨 시조이야기

나주에 풍광이 좋은 곳이 여러 곳이 있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들도 적지가 않다. 그중에 계절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평이라는 지역이 있다. 남평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한 곳으로 꼽히는 남평역이 자리한 곳이다. 남평역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남평의 지명이 있는 한 성씨가 탄생한 나주 문바위가 있다. 나주문암이라고 불리는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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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발발 직 전인 1950년 여순 반란사건 당시 소실돼 1956년 7월 신축된 이후 '광주~화순~보성'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활용되던 곳이 바로 남평이라는 지역이다. 남평역은 이용객 감소로 지난 2014년 폐쇄되기까지 지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남평역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나주문바위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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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문 씨가 이곳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경사지에 있는 이 바위의 크기는 앞에서 보면 높이가 6m, 폭이 5m에 이르며, 뒤에서 보면 1m 정도이다. 남평문 씨(南平文氏)의 시조 무성공(武成公) 문다성(文多省)이 바로 이곳에 탄강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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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 씨는 나주를 대표하는 성씨 중에 하나로 당시에 이곳을 들렀던 군주가 바위가 들렸었다고 한다. 바위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바위 위에 갑자기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문득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고 한다. 이상히 여긴 군주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돌 상자가 놓여 있고 그 속에 피부가 옥설(玉雪)같이 맑고 용모가 기이한 갓난아이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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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암이라는 한자가 결합되어 하나의 핏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이 5세에 문장 속에 담긴 사상을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 총기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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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독특하다는 느낌과 인상을 받게 해주고 있다. 하나의 성씨가 시작될 때의 설화는 전국의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바위만 있던 곳에 그 후손들이 바위 위에 ‘文巖(문암)’이라 새긴 높이 1m가량의 비를 세운 것이 1851년이라고 한다. 1975년에 다시 옛 암각을 헐고 새롭게 단장하여 ‘문암각(文巖閣)’이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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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의 형태가 다양한 재질의 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느낌이다. 마치 하나의 돌산을 만들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탄강설화가 있어서 그런지 남평이라는 지역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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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바위는 그 설화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큰 의의를 갖고 있다. 풍림리에 있는 연못 장자지(長者池)는 시조 문다성의 탄생 설화가 구전되고 있으며 드들강(지석강) 강변도로에는 선현의 자취를 기리는 남평문 씨 시조 유허비(遺墟碑)가 석굴형(石窟形)으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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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씨는 흔한 성이 아니기 때문에 잠깐만 생각해도 정치인이나 연예인등 유명인이 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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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언제 물러갈지 모르겠지만 태양빛이 쨍하게 내리쬐는 8월 남평문 씨의 시조 설화가 내려오는 문바위를 만나본다. 사람의 삶은 신성한 씨실과 지혜의 날실로 직조되어 만들어가는 것과 닮아 있다. 누군가로부터 시작해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삶의 이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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