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의 또 다른 분기점
한국의 전쟁 영화가 열심히 1998년 개봉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따라 하고 있을 때 할리우드는 또 한 번 전쟁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실적이었고 그 어떤 조미료를 넣지 않은 본연의 맛을 잘 살렸다. 2차 세계대전사에서 길이 남을 최대 철수 작전인 덩케르크를 그린 이 작품은 희생의 장렬함이나 영웅 만들기가 아닌 살아남는다라는 목표 아래 어떻게든 전장을 빠져나가려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파죽지세로 마지노선을 뚫고 프랑스군을 고립시키면서 서부 전선으로 몰아넣던 독일을 제지하기 위해 영국 해외 파견군은 해협을 건너지만 벨기에서 전투를 치르면서 딜 강에서 스헬데 강까지 퇴각하느라 진이 빠졌다. 고트 예하 제2군단 지휘관이었던 알란 브룩은 오직 기적만이 영국 해외 파견군을 구해낼 수 있다는 말까지 하게 이른다. 수세에 몰리던 영국 해외 파견군은 전투를 중단하고 뒤로 빼서 해안으로 가면서 군사들을 구할 토대를 마련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이 비교적 덜 피해를 입은 채 항구도시 덩케르크 (Dunkerque)로 갈 수 있는 데에는 히틀러의 '정지명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군과 프랑스 1군이 '운하선'의 안전지대(국지적 제한 전쟁에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묵시적 동의가 교전세력 사이에 성립된 지역)에서 잠시나마 안전한 상태에 놓였다. 그리고 덩케르크 고립 지대에 이르렀지만 히틀러의 변덕스러운 마음은 그들을 모두 쳐고픈 것으로 돌아섰다. 괴링은 히틀러에게 덩케르크 고립 지대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소개를 막는다고 보고 했고 그 보고에 히틀러는 마음을 놓았다. 독일 공군은 9일 동안 항공 공격을 가한 끝에 영국 구축함 6척과 프랑스 구축함 2척을 가라앉히는데 그쳤다.
민간의 도움을 받으면서 시작된 철수 작전은 5월 26~27일 8,000명, 5월 28일에는 1만 9,000명, 5월 29일에는 4만 7,000명, 5월 31일에는 6만 8,000명이 구조되었다. 이후 프랑스군을 태운 마지막 배가 떠나는 6월 4일까지 연합군 군인 33만 8,000명이 포로 신세를 면했다. 철수 인원에는 영국 해외 파견군 거의 모든 인력과 프랑스 군인 11만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에 독일군에 대적하는 연합군은 프랑스군 60개 사단과 연국 군 2개(1개 기갑사단 포함) 사단만 남아 있었다. 이들에 맞서 독일군은 89개 보병사단과 15개 기갑사단 및 차량화 사단을 전개했다.
덩케르크는 주인공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영화다. 일부 비중이 많은 배우들이 있지만 굳이 집중하지 않으면서 영화 자체에 몰입도를 높인다. 크리스토퍼 놀런 다운 연출이었다. 전쟁영화의 인터스텔라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작품은 음악을 BG로 넣고 여러 장면을 연결시키면서 결말로 다가가는 설정은 예전 작품과 매우 유사하다. 독일 기갑사단이 됭케르크 고립 지대로 온전히 들어오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과 지형 때문이었다.
군인들의 최대 목표는 전투 중에 살아남는 것이다. 후퇴나 철수가 최선은 아니지만 때론 최선일 수도 있다. 살아남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그것이 전쟁이다. 독일은 전격전을 실시하면서 에벤 에밀 요새, 헤이그 등에 독일군 공수가 강하하고 디낭, 아르덴, 동 셰리에서 프랑스 육군 제9군과 프랑스 육군 제1군을 몰아세웠다. 이어 파견된 영국 해외 원정군 역시 그랑블린, 됭케르크 등으로 몰아넣었다. 독일 공군은 미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확실한 우세를 점했다. 항공기의 생산과 조달에서 다양성이 지나쳤던 영국과 프랑스의 공군은 독일 공군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공중우세 전투기라는 메서슈미트 109, 덩케르크에서도 공포의 존재였던 지상공격용 급강하 폭격기 융커스 87, 효율적인 중형 폭격기인 하인켈 111등 몇 가지가 안 되는 항공기의 대량생산에 집중했다.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고 할 만하다. 억지스러운 신파도 없고 유혈이 낭자한 전투 장면도 거의 없다. 극적인 효과를 유발하는 감정 소모도 없지만 마치 전쟁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만들어냈다. 하늘, 육지와 바다, 군인과 민간인의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교차시키면서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