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크리스마스이브의 케이크

누군가의 축하였고 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케이크에 쓰인 문구는 대부분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 이런 것이 아니었나? 무슨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주문자의 정보아래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았다. 물품정보는 소형 세 변의 합 80cm 2kg 이하, 유의사항은 절대 연락 x, 벨 x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라는 표현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가는 길목에 이미 예약을 했었던 케이크를 하나 더 가져다주기로 했다. 식당의 안쪽에 따로 베이커리 공간을 만들어둔 곳에서 케이크를 만들어서 배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때 처음 나오는 종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플리 하나로 따뜻한 분위기가 완성되는 따뜻한 분위기가 안을 감싸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주문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케이크를 포장하던 대표가 쳐다보며 말했다. "케이크를 배달하시는 분이 그런 걸 물어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그게 이상한가요?"

"아니요. 물어볼 수도 있죠. 이 케이크는 좀 특별한 거래요."

"아빠가 딸 20살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는 케이크이라고 해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동안 보지 못했었나 봐요. 직접 와서 같이 넣어서 보내달라고 편지 같은 것도 주셨어요. 꼭 시간 맞춰서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이거 받고 바로 가시는 거죠?"

"예, 바로 가기는 하는데요. 먼저 한 곳 가져다 줄 곳이 있긴 해요."

"거리가 좀 있어서 가격이 책정되기는 했지만 특별히 부탁해서 프리미엄이 붙은 거예요."

"예 아주 안전하게 제시간에 가져다줄 수 있게 할게요."


연석이가 살고 있는 곳은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는 곳이었다. 크리스마스나 특정한 기념일만 되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구매할 수가 있는 곳이었다. 아마 지금 그곳에서 케이크를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있었다. 케이크 두 개를 배달할 곳은 모두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연석은 케이크를 마치 아기를 태우듯이 뒷자리에 하나씩 두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연결되어 있는 OTT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나 재생했다. 크리스마스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낸 스쿠르지는 평생 돈에 집착하면서 사랑이라던가 인간관계도 거부하면서 살았다. 그랬던 그가 성탄절 밤에 찾아온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과의 여정을 통해 잃어버린 가족이 온기, 이웃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 삶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베푸는 것으로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연석은 어릴 때 읽었던 소설에서 가족의 붕괴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보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얼핏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연석은 잠시 과거로 회귀해서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얼마나 운전을 했을까. "나의 미래는 내가 결정한다."라고 빨간 시럽으로 쓰인 케이크의 목적지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이런 곳에 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하는 곳으로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시작했다. 왜 SUV만 가능하다고 했는지 드디어 알 수가 있었다. 마치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가 생일 파티 후 숨진 채 발견된 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내용이 담긴 나이브스 아웃 속의 별장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아서 윈터 타이어에 사륜구동을 구동하고서도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케이크를 배달하면서 가장 낯설고 미묘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날이 금방 어두워지면서 조금씩 주변환경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판타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 속에서나 볼만한 조명이 몇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쪽으로 철문이 보였다. 철문은 조금 녹슬긴 했지만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무슨 일로 케이크를 주문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문자와 받는 사람은 모두 같은 이름이었다. 차에서 내린 연석은 차에서 내려서 뒷좌석에 있었던 케이크를 들고 철문 쪽으로 다가갔다.


철문 앞에 케이크를 놓을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냥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 보낼 수가 있었지만 크라스마스 이브날에 특별히 주문한 것이라면 보기 좋은 곳에 놓고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석은 철문을 밀어보았다. 잠겨 있지 않아서 안쪽으로 가벼운 마찰음을 내면서 열렸다. 집의 마당은 생각보다 컸지만 정원이 잘 가꾸어진 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안쪽에 1950년대쯤 지어졌을 것 같은 붉은색 벽돌의 아담한 집이 보였다. 방에는 요즘의 LED등이 아닌 옛날의 백열전구가 켜져 있는 듯하게 어릿어릿한 모습만 보였다. 전구의 색은 살짝 어두운 주광색이라고 할까. 천천히 걸어서 문 앞에까지 가자 문 옆에는 언제쯤 앉았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흔들의자가 있고 그 흔들의자에는 낡고 해진 머플러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케이크를 놓고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연석은 집의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졌다. 집의 주변에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그런 흔적들이 보이지가 않았다. 평소에도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상황에 대한 추리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연석은 어두웠지만 케이크를 주문한 취향과 집을 꾸민 것이나 주변에 놓인 것들을 보아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홀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지만 여기까지였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는 목적처럼 보이지가 않았고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할 수 있는 수단조차 남겨놓지 않은 것은 홀로 무언가를 결절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케이크를 두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딸을 위한 케이크를 전달하기 위해 차의 시동을 켰다. 마침 크리스마스캐럴에서는 과거에 죽은 스크루지의 친구가 나와 말을 걸고 있었을 때였다. 들어왔던 오프로드길을 돌아서 나가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지더니 땅거미가 내려앉은 길은 운전하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프로드에서 벗어나 잘 포장된 도로에 진입해서 속도를 올리고 있을 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는 모르는 번호를 잘 받지 않았지만 케이크 배달을 할 때는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나이가 지극하게 드신 여성의 목소리였다. 어렴풋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목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거기가 오늘 케이크배달하시는 분이죠?"

"예? 뭐 그렇긴 한데. 왜 그러시죠?"

"아! 혹시 오늘 오전에 손녀가 케이크를 배달해 달라고 부탁해서 가져다주신 거 기억나세요?"

"예. 알죠.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신 건가요? 케이크가 무언가 잘못되었나요?"

"아니요. 케이크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혹시 오늘 조금 이상한 데로 배달이 가지 않았어요?"

"이상한데요? 이상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죠?"

"아니... 뭐 기분... 아니 됐어요. 괜히 전화했네요. 바쁠 텐데 그냥 넘기세요."


전화를 끊고 별생각 없이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렇게 운전을 하던 연석은 번쩍 무언가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오전에 보았던 그 할머니의 집은 지브리 애니에서 등장할만한 느낌의 이쁜 집이었는데 방금 전에 방문했던 그 집은 분위기는 비슷한데 상당히 어두운 느낌이 드는 집이었던 것이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지만 밝고 어두운 느낌의 차이랄까. 연석은 차량의 내비게이션이 있는 창에 남아 있는 전화번호를 버튼으로 다시 눌렀다. 몇 번 울리지 않았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할머니, 혹시 살고 계신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나요?"

"다른 집?..."

"예 도시가 아닌 조금은 외진 곳에 있는 집이요."

5초쯤 지나서야 말을 이었다.

"세상 떠난 남편에게 집이 있었어요. 아마도 딸에게 물려줬던 것으로 기억해요."

"거기 주소가 XXX, XXX가 아닌가요?"

"아마도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왜 오늘 그런 일을 물어보시는 거예요?

"사실 내가 처음 보는 총각 한데 모두 말할 수는 없는데 소녀에게 부모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아빠는 사고로 죽고 엄마가 있는데 그 충격으로 사회생활을 거의 못하고 사람구실 못하고 살았어. 그런데 최근에 이상한 일들이 생겼는데 오늘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픽커를 운영하는 회사에 전화해서 수소문하다가 다섯 번째만에 총각과 통화하게 된 거야."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

"그래? 손녀한테 이런 문자를 보냈다고 해서.."나의 미래는 내가 결정할 테니 너의 미래는 네가 결정해라." 딸이 그 일이 있고 나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그 사람이 죽은 것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결정한다는 말을 종종 했거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케이크를 만들었던 제빵사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런 케이크를 판매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는 않았다.


"어르신, 혹시 따님분이 막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시나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병원 다니면서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한 달 전에 갑자기 사라져서 그 이후로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요? 그럼 전화를 끊어보세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연석은 전화를 끊지 마자 오전에 케이크를 배달했던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지만 바로 움직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연석은 112로 전화를 걸었다. 112로 전화해서 해당주소를 알려주고 이모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바로 차를 그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신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책임감이라던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아니었다. 사소하지만 365일 중에 행복한 날을 기리는 그런 날이 내일을 보지 못하는 때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가장 빠르게 그 집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차를 끌고 다시 그 외딴길을 따라서 먼지를 내면서 들어갔다.


마음속으로는 그 케이크에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철문을 차로 밀고 그냥 집의 문 앞까지 들어갔다. 연석은 운전석의 문을 열고 뛰어가서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렇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연석은 나무로 되어 있던 그 문을 힘차게 여러 번 차자 문을 안쪽으로 비틀어지는듯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곳에는 무릎을 꿇고 케이크 앞에서 서 있는 40대 중반의 여성이 보였다.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약간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연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어떻게 여길 찾았는지에 대한 의구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누구세요?"

"저는 박연석이라고 합니다. 그 케이크 어디에서 주문하신 건가요?"

"아니 누군가 여기 들어와서 케이크를 어떻게 주문했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럼 어머니가 살아계시죠? XXX동에 지브리에서 등장할만한 그런 이쁜 집이요."


여자는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연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자신의 어머니가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112에서 출동한 경찰이 집으로 들어와서 상황을 수습했다. 그녀가 주문한 케이크는 일명 삶의 마지막 베이커리라는 온라인에서 숨겨져 있지만 잘 알려진 가게에서 파는 상품이었다. 삶을 끝내고 싶은 스스로에게 주는 온전한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독극물을 아무런 고통 없이 먹을 수 있다고 광고를 했지만 사실 독극물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단지 그녀가 그걸 진심으로 믿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괴기한 형태의 케이크 디자인을 만들기로 유명한 가게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이 되고 연석은 자신의 차량이 파손된 것을 자차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적 선택과 구조속에서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소한 케이크하나에 잠시나마 행복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케이크 하나가 누군가의 내일을 바꾸는 순간을 포착한, 조용하고 단단한 이야기."

"우리는 모두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삶에 다녀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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