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번째 수요일,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1년 365일을 주단위로 나누게 되면 52주가 된다. 52개의 주중에 가장 특별한 주가 있을 수는 있다. 일주일에 단 하루는 매우 특별한 날이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배달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날이기도 하다. 직업은 따로 있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픽커 일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도 오토바이나 경차가 아닌 남자들이 사고 싶어 하는 차 브랜드인 포르셰의 마칸이었다. 연석은 차를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돈 쓸 곳이 많지가 않아서 샀을 뿐이다. 그리고 픽커일도 제법 재미있다.
연석이 하는 픽커는 딱 정해져 있다. 연석은 케이크만 배달을 한다. 깔끔하게 관리된 차에 안전하게 케이크를 싣고 가져다주면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만드는 사람도 정성을 다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선물하는 특별한 날의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12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날 픽커를 하기로 한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매주 수요일에만 픽커일을 했는데 우연하게 올해는 크리스마스이브와 겹쳤다. 연석은 아침 9시부터 픽커일을 시작을 했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어떤 배달일이 올라오는지 알리는 알림이 그때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케이크를 배달하는 리스트에는 거의 동일하게 적혀 있는 문구가 있다.
"케이크이에요. 조심해서 잘 부탁드려요."
"파손 주의해 주세요."
"시간 맞춰서 잘 배달해 주세요."
"절때 흔들지 마세요."
누군가에게는 그냥 짐일 수가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날을 장식해 줄 중요한 선물이다. 물론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의 삶의 가치를 고려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해보고 나서 느낀 것은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점을 이어주는 일은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그렇게 새롭게 무언가를 주문하고 받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삶은 지속되고 있었다. 깔끔하게 씻고 옷을 정갈하게 입은 연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스마트폰에 뜬 배달리스트를 획인하였다.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몰라도 케이크 배달 리스트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연석은 그 리스트 중에 주소를 확인하고 첫 번째 리스트를 수락했다. 픽업지에서 배 달지까지의 거리는 10km 정도 되었다. 연석은 준비요청을 터치한 뒤에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겨울이었지만 이브다운 분위기가 풀여가는 것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검은색 바디의 SUV가 눈에 뜨였다. 차량에 시동을 켜자 포르셰특유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전기차도 나오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내연기관 엔진의 엔진음이 좋았다. 픽업지로 가볍게 운전을 해서 이동을 했다. 1년을 넘게 일을 해서 그런지 도시에서 수제케이크를 만드는 가게들 대부분 방문했다. 처음에는 포르셰를 끌고 온 연석을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눈인사를 하고 가볍게 잡담을 나누기도 한 사이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곳으로 가는 케이크는 준비가 됐나요?"
"아직 지금 포장만 마무리하면 돼요. 크리스마스이브인데도 케이크를 배달을 하시네요."
"크리스마스이브가 케이크배달하기 가장 놓은 날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직접 케이크를 배달해주고 싶은 분은 안 계세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져다주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요. 이번에는 누가 배달을 주문한 거예요?"
"아마 손녀가 할머니에게 케이크배달을 부탁한 거 같아요."
"손녀가요?"
"예 이 도시에는 살고 있지 않은데 부모 없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매년 케이크배달을 부탁하고 있어요."
연석은 마무리가 된 케이크를 차의 조수석에 흔들리지 않게 잘 두고 시동을 걸었다. 연석은 교통흐름에 맞춰서 운전은 하지만 차에 흔들림이 없이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조급함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연해서 가져다준 적도 없었다. 사실 픽커 일로 버는 돈은 사실 그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냥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여기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추리하는 것이 그의 색다른 취미라고 할까. 배 달지의 주소로 도착하자 집은 상당이 오래된 주택이었다. 오래전에는 꽤나 괜찮은 주택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그냥 낡은 주택처럼 보였다. 주택은 아파트나 빌라와 달리 앞에다가 두고 올 수가 없어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했었다. 오래된 집들 사이의 마치 지브리 애니에서나 볼만한 독특한 집의 벨을 두 번쯤 누르자 낡은 대문이 열리며 체구가 작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가진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세요. 오래간만에 사람이 찾아왔네요."
"안녕하세요. 손녀가 보낸 케이크인 거 같아요."
할머니는 연석이 하는 말을 듣고 손에 들려 있던 케이크를 받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사이즈에 케이크에는 69번째 X-Mas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할머니의 지연이가...라는 문구가 아래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아이고 손녀가 올해도 잊지 않고 케이크를 보냈네. 고마워요. 잘 가져다줘서..."
"아니에요. 해피 크리스마스 되세요."
"청년의 눈이 참 좋네 그려."
"제 눈이요? 그런 소리는 잘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아니요. 요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그런 눈이랄까. 아무튼 고마워요."
연석은 인사를 하고 자신의 차로 와서 앉았다. 시동을 걸고 다시 앱을 보니 케이크배달건이 또 있었다. 이번에 도착지를 보니 호텔의 최상층인 것을 보니 돌잔치 아니면 환갑잔치에 사용할 케이크로 생각되었다. 수제 케이크를 만드는 자영업자 중에는 생각보다 미대 출신들이 많았다. 자신이 가진 미적인 감각을 활용해서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데 일반 프랜차이즈 빵집등에서 만들 수 없는 그런 케이크를 만들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자영업의 생존이 힘들기는 하지만 기회는 오직 사람만이 만들 수가 있었다. 미대를 나온 그녀가 케이크를 만드는 곳은 상가건물의 5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아침에 구웠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쿠키봉지를 하나 건네주었다.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이브네도 열심이시네요."
"저야 크리스마스이브가 대목이죠."
"그런가요. 저도 우연하게 오늘 이 일을 하네요."
"안 하셔도 되잖아요. 그런데 꾸준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 좀 특이한 사람 같아 보여요."
"저야 재미있어요.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도 케이크를 받는 사람도 모두 즐거워 보여요. 그리고 케이크를 가져다줄 때 대화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맛있게 드시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잠시만 쿠키 드시면서 기다려주세요. 이제 포장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예 잘 마무리해 주세요."
연석은 아침에 구워서 그런지 바삭바삭함이 있는 쿠키를 먹으면서 이젤에 놓여 있는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제법 디테일이 살아있는 인물 그림들이 유화로 그려져 있었다. 얼핏 보면 수채화물감으로 그린 것 같지만 유화만의 밀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마무리가 된 케이크를 가지고 호텔로 향했다. 컨벤션센터가 자리한 곳에 운영이 되고 있는 호텔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었다. 연석은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환갑이나 칠순 같은 행사는 이제 가족행사로 모두 바뀌었고 돌잔치 역시 가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결혼식도 그렇게 축소가 될 것이다. 사람의 생로병사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태도가 바뀌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케이크배달을 픽한 연석은 케이크를 만드는 곳으로 향했다. 골목길 안에 자리한 그 케이크가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표방하는듯한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케이크 받으러 왔어요."
안쪽에는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소녀는 연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가 이 케이크를 가져다주실 분이에요?"
"아저씨? 뭐 그렇게 부를 수도 있지. 내가 안전하고 신속하게 가져다줄 거야. 그런데 아저씨보다는 젊은 삼촌으로 불러주면 좋지 않을까."
"아~ 예... 이 케이크 사실 먹지는 못할 거예요. 엄마가 시한부인데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맞을 수가 있어서 내년도 기다리시라고 보내드리는 거예요."
"그럼 이 케이크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같은 역할을 하는 거구나?"
"오헨리가 누군데요?"
"낙엽 같은 것을 벽에 그린 화가이야기를 쓴 사람이 있어."
케이크를 받아 든 연석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찾아갔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병동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전달된 케이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와 딸을 생각하면서 연석은 자신이 배달한 케이크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케이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의 하루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이어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친구에서 케이크와 꽃배달을 부탁한 남자, 어제 부부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이 와이프에게 배달을 부탁한 케이크의 사연, 남자에게서 배달받은 케이크를 들고 자신의 포르셰 마칸과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SNS 인플루언서등 여러 사연이 있는 케이크를 배달하였다. 그러던 중에 경찰서로 케이크를 부탁한 케이크를 픽업하게 되었다. 케이크를 픽업하기 위해 간 가게에서 자세하게 손 편지로 메모가 젹혀 있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해 준 남편 사랑해요. 경위 진급을 축하해요. 내일은 들어오실 거요? 배달하시는 분에게도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좀처럼 밖으로 못 나오니 전화번호를 남겨요. 010 XXXX XXXX로 전화하시면 나와서 케이크를 가져갈 거예요."
한 가족이면서도 경찰 강력계에 있으면 가족과 특정한 날 같이 있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TV등에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팀에서 보낼 크리스마스이브에 먹을 케이크를 배달하는 와이프의 마음이 느껴졌다. 케이크를 픽업한 연석은 경찰서로 가서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케이크를 받으러 나온 그는 강력계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은 베테랑이었다. 케이크를 받은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자신의 전화기를 들어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그 얼굴의 뒤에는 그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을 단골집에서 라멘으로 해결한 지 몇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의 폰의 앱에는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적힌 오더가 떴다. 케이크를 픽업 하는 지역이 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5배 요금을 책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제한 조건이 SUV만 가능하다는 표시가 적혀 있었다. 케이크를 배달하는 데 있어서 SUV만 가능하다는 표시는 대체 무엇일까. 연석은 궁금해졌다. 대체 이 케이크 배달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주문자의 이름이라던가 연락할 수 있는 안심 전화번호는 적혀 있지 않았다. 연석은 고민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 주문은 좀처럼 수락되지 않았다. 연석은 해당오더를 수락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케이크를 만드는 전형적인 가게와는 달리 조금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제빵사의 표정은 미묘했다. 하얀색의 케이크에 빨간색 시럽으로 문구가 쓰여 있었는데 일반적인 문구가 아닌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주문은 이름이 없네요."
"에 저도 주문한 분들의 정보는 몰라요."
"그렇기는 하지만 여기는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일반적인 가게가 아닌 거 같아요."
"일반적인 가게는 어떤데요?"
"아니요.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다 마무리되셨어요?"
"예 이제 가져가시면 됩니다."
받은 케이크의 위에 빨간색 시럽으로 쓰인 문구가 의미심장했다.
"나의 미래는 내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