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의 겨울소리, 옥계폭포

아름다운 여름풍경을 보여주었던 옥계폭포의 겨울풍경을 담다.

영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 옥계폭포를 몇 번이나 방문했을까. 여름, 가을, 초겨울에도 이곳을 방문해 보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 속으로 들어간 옥계폭포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전혀 색다른 모습의 옥계폭포는 필자에게 차갑지만 온화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낮아진 온도 덕분에 바위 사이로 떨어져야 할 물은 끝내 낙하를 포기하고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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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던 폭포수는 좁은 협곡을 따라 천천히 굳어가며 하나의 얼음이 되었다. 위에서 아래까지 이어진 얼음은 매끈하지도, 완전히 투명하지도 않다. 겹겹이 쌓인 결빙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이곳을 지나간 시간의 두께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날의 옥계폭포는 흐름이 아니라 정지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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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은 세종에게 당시 불완전한 악기의 조율(調律)의 정리와 악보 찬집(撰集)의 필요성을 상소하여 허락을 얻고, 1427년(세종 9) 편경 12매를 제작, 자작한 12 율관(律管)에 의거한 정확한 음률로 연주하게 했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음악가였다. 그가 옥계폭포를 사랑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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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얼어있는 덕분에 가까이 가서 옥계폭포의 속으로 들어가 볼 수가 있었다.ㅣ 아래에서 올려다본 얼음폭포는 마치 협곡이 스스로 숨을 멈춘 듯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바위는 어둡고 거칠게 남아 있지만, 그 사이에 끼어든 얼음은 유난히 밝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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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받은 표면은 유리처럼 반사되고, 그 아래에는 기포와 균열이 층층이 박혀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신비한 느낌마전 든다. 한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 이 얼음은 자연이 만든 조형물처럼 서 있다. 옥계폭포는 20여 미터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시원한 장관을 이루며, 울창한 숲길 사이에 있어 주변 풍광이 매우 수려해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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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아래에 고인 얼음 위에는 낙엽 몇 장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스쳐 지나간듯한 가을의 흔적이 겨울에 갇힌 채 움직이지 못한다. 물이 흘렀다면 씻겨 내려갔을 것들이지만, 얼음이 되면서 시간까지 붙잡아 버렸다. 영동의 겨울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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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폭포 일대는 그동안 노후한 편의시설과 어두운 진입도로 등에 따른 불편 민원이 이어졌는데 2025년에 경관개선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영동군 심천면 난계사에서 옥천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3㎞를 가다가 왼쪽 천모산 계곡으로 1㎞ 더 들어가면 옥계폭포를 만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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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동양화 같은 울창한 숲과 30여 m 높이에서 웅장하게 떨어지는 옥계폭포의 물줄기를 구경하려는 탐방객들이 주말과 휴일에 이어진다.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리는 난계 박연(朴堧·1378~1458) 선생이 낙향해 피리를 자주 불던 곳으로 알려져 일명 '박연폭포'로도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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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던 옥계폭포는 겨울에 이르러 비로소 본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흐르지 않는 물, 멈춘 소리, 얼어붙은 시간 앞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낮추게 된다. 아마도 이곳에서 박연이 피리를 불며 머물렀던 이유도 그러했을 것이다. 요란한 장관이 아니라,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이 고요해지는 시간 속에 겨울의 옥계폭포는 차갑지만 거칠지 않고, 멈춰 있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영동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만나는 이 폭포는 계절의 끝자락에서 자연이 건네는 가장 조용한 인사처럼,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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