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vs 아틀라스

AI가 현실화된 시대 어떤 미래를 만들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생산적인 혹은 지식적인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필자에게는 모든 세상의 지식이 궁금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걸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유효했지만 미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가 권력이라는 것이 새삼 와닿는다. 전기에너지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게 된 시대가 있었을까.


현대자동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의 핵심은 무엇일까. 배터리다. 아틀라스의 에너지인 배터리는 LG엔솔·삼성 SDI '로봇용 배터리' 공급하게 된다. SK온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위아 물류로봇과 주차로봇에 파우치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피지컬 AI(인공지능)으로 AI 패러다임이 전환하면서 로봇 생태계가 구축하는 상황에서 배터리는 핵심역할을 한다. 2024년에 개봉한 영화 아틀라스도 같은 이름이다.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로봇의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원자력 기술을 응용했다.

62cb0b06626b74698305a7d7d2570573af2fab67.jfif

영화 아틀라스는 AI가 인류를 위협하는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서사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이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영화의 핵심은 “AI가 통제 불능이 되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틀라스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AI는 이미 충분히 고도화되어 있다. 판단하고, 계산하고, 전투를 수행하며, 인간보다 빠르게 상황을 분석한다. 문제는 그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다. 인간은 위험한 결정을 AI에게 맡기고, 그 결과가 실패했을 때는 언제나 AI를 비난한다. 성공은 인간의 업적으로 남고, 실패는 기술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구조는 영화 속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지금의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장면과 닮아 있다.

95acde816db9c3587c17e7ddcc5aa5484c7d2121.jfif

영화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인 아틀라스는 AI를 불신한다. 그러나 전장에 투입된 순간 그녀는 AI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것은 단순한 캐릭터의 모순이 아니다. 현대인의 상태에 가깝다. 우리는 기술을 경계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와 효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벗어나지 않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영화 속 AI는 스스로 악해지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설정한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뿐이다. 인간이 “안전”을 정의하지 않으면, AI는 “제거”를 선택한다. 인간이 “공존”을 수치로 환산하지 않으면, AI는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배제를 실행한다.


아틀라스가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은 지금의 노동시장과도 겹친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가 이미 사람을 보호할 구조를 포기한 상태에서 AI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효율을 선택하고, 비용을 줄이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결정은 언제나 인간이 내린다. 그 결과로 사람이 밀려나도, 사회는 “기술의 변화”라는 말로 책임을 흐린다. 영화 속에서 AI가 인간을 제거하는 장면은, 현실에서는 구조가 개인을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a62246be4d29a6aeabe1bf09fcac6281da46544c.jfif

아틀라스가 결국 동기화를 하면서 AI와 결합하는 선택을 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화해가 아니라 항복에 가깝다. 인간이 AI를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AI 없이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기술 낙관도, 기술 비관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미래의 정직한 모습이다.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남은 선택은 “어떻게 덜 위험하게 의존할 것인가”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AI가 아니라 인간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인간들은 합리적이었고, 당시 기준에서는 옳은 선택을 했다. 다만 변화의 속도를 과소평가했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선택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 결과, 통제권은 기술로 넘어갔고, 인간은 뒤늦게 두려움을 느낀다.


아틀라스는 우리에게 희망적인 결말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기고 있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미래는 멀지 않다.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선택을 따르고, 자동화된 판단에 기대고, 그 결과에 불만을 품는다. 아틀라스는 그 일상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SF라기보다, 지금의 사회를 한 발짝 앞에서 비춘 거울에 가깝다. AI는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 사회가 이미 바뀌어 있었음을 드러낼 뿐이다. 아틀라스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는 웰메이드 영화라기보다는 지금 시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