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0대의 현실과 비현실이 적당하게 믹싱 된 영화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이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타적인 행동조차도 그것에 대한 결과는 자신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해친다던가 이익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분명한 것은 살다 보면 어쩔 수가 없는 환경에 처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 어떤 선택을 할 수가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선택지가 있는 사람과 선택지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변화를 미리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연기력이 되는 배우들이 여럿이 등장한 영화다.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박희순, 차승헌, 오달수, 유인석 등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지도 않고 재미없지도 않다. 웃기지도 않은 것 같은데 때론 웃긴 장면이 나오고 오래전 이야기인 것 같은데 현실이야기를 담고 있다. 묘한 교차점에서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일자리를 잃어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
이제 한국은 과거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과거의 방식처럼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으면 가정을 지키고 그럭저럭 삶이 유지되던 방식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모든 가치관이 바뀌는 시대가 되었다.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는 아내 미리와 두 아이, 반려동물 두 마리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지면 만수는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50대 중반이 넘어간 그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 이외에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리는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나름의 중산층의 일상을 누리면서 살아갔다. 테니스를 치고 음악을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접어야 했다. 그렇게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충격에 괴로워하던 만수는 같은 직종의 일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1년 넘게 작은 월급을 받으면서 면접을 보지만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 간다. 제지와 같은 회사는 사양산업이다. 이제 제지 없게도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에 그 위치에서 원래 일하고 있는 선출 외에 범모, 시조 그리고 만수는 어쩔 수가 없는 상태다.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윤리보다 생존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의 문제는 그다음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제거하려는 이유도 결국은 악의가 아니라 공포다. 내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그 공포는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가장 가고 싶은 자리는 하나뿐인데 이미 선출이라는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이며 그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범모와 시조가 남아 있다. 만수는 이 세명을 모두 제거하고 그 자리에 가려고 한다. 그리고 나름 분석을 하지만 그 과정이 어설프면서도 연민이 느껴진다. 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이 했던 일만 고집하게 될까. 결국 그런 선택이 스스로를 옥죄게 만들고 결국에는 어절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만든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이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실했고, 한 시대의 규칙을 충실히 따랐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다만 변화가 오기 전에 다른 선택지를 준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되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런 구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유물과 같은 모습이다. 과거에 배웠던 것만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네 남자는 다른 길은 아예 생각하지 못하고 남자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부인의 모습에서 답답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앞으로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로 나오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AI와 자동화로 인해 사람이 없어진 제조공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거스를 수가 없는 변화이기도 하다.
네 남자는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물어보고 싶다.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는가. 그러나 영화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는다. 이미 늦어버린 시간, 이미 좁아진 길 위에 선 사람들에게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계산이 된다.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내가 설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이들은 점점 더 비열해지고, 동시에 더 초라해진다. 그 과정이 잔인하게 그려지기보다는 어딘가 어설프고 서툴게 묘사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묘한 힘이다. 웃기지도 않은데 웃음이 나오고,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가 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지 않는다. 한 직업, 한 기술, 한 정체성에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안전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선택지를 줄이는 족쇄가 되는 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은 냉정한 현실 다큐에 가깝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결과다.
선택을 미뤄온 시간, 변화를 외면한 축적, 그리고 준비하지 않았던 미래가 한꺼번에 몰려왔을 때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다. 영화는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 만수는 식물에 과도하게 집착을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어렵고, 쉽게 연민만 느끼기에도 찜찜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분명하다. 스크린 속 인물들에서, 우리가 외면해 온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 가지 질문을 계속 붙잡게 만들고 있다 지금 나는, 선택지를 늘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미래로 달려가고 있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