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한국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시장경제주의도 아닌 탐욕을 부추기는 나라?

다른 국가를 여행해 보면 알겠지만 한국은 인프라가 상당히 잘 갖추어진 국가다. 도로망도 잘 조성이 되어 있고 IT기반 시스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 국민이 잘살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어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장벽을 세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모든 국민들에게 동등한 조건을 주지도 않으면서도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떨구는 시스템을 당연히 생각하는 나라가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의대를 비롯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상당수의 가정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판이 나 있다.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머리가 좋지 않거나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걸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의 현실에서 입시를 바꾸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사교육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온갖 이상한 제도를 만들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사교육 시장만 키워주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았는가. 정말 잘해서 그들이 특정대학이나 학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라고 말하고 시장경제를 신뢰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시장만은 예외다. 부동산이다. 부동산도 학군과 무관하지는 않다. 미래에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티켓이랄까. 부동산은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이고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것처럼 생각한다. 전세는 원래 금융이 부족했던 시대의 임시 장치였다. 은행 대신 집주인이 금융기관 역할을 하던 시절의 유산의 잔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임시방편이 이제는 국가가 보증하는 제도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정 정치인들이 민간에 맡기자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세제도와 그걸 보증하는 국가시스템은 정상인가? 어떤 국가가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보증을 해주는가. 이건 시장경제에 전혀 맞지 않은 말이다. 이걸 마치 국민들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 속내는 부동산 가격 유지하기에 있다. 그렇다면 시장경제를 운운하지 않는 것이 맞다. 어떤 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면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고 어떤 것은 시장경제에 맡겨야 하는가.


보증금은 대출로 만들어지고 대출은 집값을 떠받치고 집값은 다시 금융 시스템을 지탱하고 이 구조에서 집값 하락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다. 금융 리스크다. 아니 아무 잘못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을 유지하겠다고 정부가 돈을 찍어대는 이 리스크를 왜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집을 사기 위해 혹은 살기 위해 대출한 돈은 모두 찍어낸 돈이다. 기축통화도 없는 한국이 돈을 찍어대면 모든 국민이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한다. 왜 죄 없는 사람들의 화폐를 가볍게 만드는가.


정책 실패는 꾸준히 있어왔다. 사회 불안 속에서 시장은 존재하지만 시장 기능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부동산 가격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고 유지된다. 필요하다면 세금으로, 대출로, 보증으로, 규제로. 시장경제를 신봉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격 안정이 최우선 목표다. 정확히 말하면 가격 상승의 안정. 더 흥미로운 장면은 개인의 행동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서로 약속한다. 가격을 내리지 말자고. 급매를 내놓지 말자고 서로의 자산을 지키자고. 시장경제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자연스럽다. 법적으로는 담합이다.


대부분 죄책감이 없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 집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은 생존 장치다. 노후 대비다.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다. 복지의 대체재다. 연금보다 확실하고 임금보다 강력하고 정책보다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가격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방어한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탐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탐욕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한다. 이것은 개인의 욕망이라기보다 집단적 공포에 가깝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자산 없이는 안전할 수 없다는 신호를 반복해서 학습했다. 복지는 약했고 고용은 불안했고 경쟁은 치열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심리 시스템이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과 기대, 은마아파트가 무엇이 좋겠는가. 삶의 질은 형편없다. 그냥 가격으로 말할 뿐이다. 공포와 확신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감정을 국가가 함께 관리한다. 이상한 점은 모두가 이 구조의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이 비정상적이라는 것도 알고 전세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담합이 시장을 왜곡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지만 완전히 시장경제 국가는 아니다. 시장 원리를 믿지만 시장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격 상승은 노력의 보상이고 가격 하락은 반드시 막아야 할 재난이다. 이 모순은 정책이 만든 것도 아니고 국민이 만든 것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만들어낸 집단적 균형이다. 분명히 한국은 괜찮게 살고 있는 국가이면서 막다른 길이 보이는 듯한 느낌의 나라이기도하다.


이 구조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불안 위에 자산을 쌓고,
자산 위에 계층을 만들고,
계층 위에 교육을 얹고,
교육 위에 미래를 배치하는 방식.

한국 사회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반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다. 불안, 기대, 공포, 그리고 가격 상승에 대한 집단적 신념이 있었다. 문제는 이제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사회 구조를 재편하는 힘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학력 → 직업 → 소득 → 자산 → 안정이라는 매우 선형적인 경로를 전제로 작동해 왔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업을 얻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집을 사고 그 집값이 미래를 보장해 주는 구조가 있었다. 하지만 AI는 이 경로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식 노동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전문직의 희소성이 줄어들고 노동소득의 안정성이 약해진다.


그 순간 교육을 통해 계층을 유지하는 구조도 흔들리고 노동소득을 기반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모델도 흔들린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던 신념,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도 시험대에 오른다. AI 시대는 희소성이 자산이 아니라 적응력이 자산이 되는 시대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희소한 자격, 희소한 학벌, 희소한 입지에 미래를 걸고 있다. 과거의 게임 규칙을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하고 있다. 만약 노동이 불안정해지고 소득이 예측 불가능해지고 인구가 줄어들고 성장이 둔화된다면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그 개입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어쩌면 한국 사회가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은 부동산 가격이 아니라 과거의 질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은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다. 현실은 신념을 보호하지 않는다. 한국은 여전히 잘 작동하는 나라다. 인프라는 훌륭하고 시스템은 정교하며 질서는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시스템에는 공통점이 있다. AI는 효율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구조를 노출시킨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불균형을 드러내고 유지되던 질서를 시험하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전제를 무너뜨린다.


한국 사회가 직면하게 될 진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를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집값이 아니라
기술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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